美 IT 버블 '악몽의 그림자'
1999년은 실리콘밸리에선 ‘악몽의 해’다. 정보기술(IT) 관련주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미국 증시가 2000년대 들어 갑자기 붕괴됐기 때문이다. 1999년에 집중 투자했던 개미들은 거품 붕괴로 인한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고, 잘나가던 IT벤처들은 줄도산했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 ‘1999년 악몽’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증시가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다. 미국 기업의 올 3분기 실적은 놀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부 IT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미국 증시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상황 때문에 일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을 2013년이 아니라 1999년처럼 느낀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부 IT 주가 폭등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 여행 사이트인 프라이스라인, 인터넷 검색 업체 구글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1년새 테슬라가 467% 오른 것을 비롯해 넷플릭스 331%, 프라이스라인 68.85%, 구글이 50.24% 상승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인 링크트인과 페이스북도 각각 110%, 140% 올랐다. 이번주 기업공개(IPO)가 예정된 트위터도 이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트위터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사흘 앞둔 4일 공모가 예상치를 당초 17~20달러에서 23~25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투자자들이 몰려서다. 트위터가 이번 IPO로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은 20억달러 이상이다.

美 IT 버블 '악몽의 그림자'
이 같은 IT주식의 급등에 힘입어 뉴욕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폐쇄), 통화정책 불확실성 등 거대한 암초도 상승세를 막지 못했다. 올 들어 현재까지 다우지수는 19%, S&P500지수는 24%, 나스닥은 30% 상승했다. 잭 애블린 BMO프라이빗뱅크 최고투자책임자는 “1990년대 후반 IT 호황이 생각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PO 홍수…정점이라는 근거”

전문가들은 IT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아 매력적인 만큼 우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고 경고한다. 페이스북은 최근 예상보다 높은 3분기 실적을 발표했지만 미국 10대들의 페이스북 사용은 되레 감소했다. 사용자 뉴스피드에 광고를 더 넣을 수 없다고 말해 투자자들을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다. ‘거품론’이 제기되는 테슬라의 현재 시가총액은 190억달러 이상으로 규모가 훨씬 큰 제너럴모터스(GM)의 시가총액 510억달러의 40%에 이른다. GM은 올해 테슬라보다 75배 많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IPO가 많아진 것도 거품 붕괴의 신호로 꼽힌다. 체비엇밸류매니지먼트의 대런 폴락은 “경기가 바닥일 때 이렇게 많은 IPO가 일어나진 않는다. 기업의 주식 발행과 증권담보 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수의 상승주를 둘러싸고 투기가 일어날 때 호황 장세는 정점을 찍고 떨어질 일만 남는다”며 “지금 세 가지 요소가 다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가격의 움직임도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8월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006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9월 상승폭은 둔화됐다. 주택 가격이 정점에 다가서고 있다는 뜻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