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실 사전 방지] 은행, 대기업 감시망 확대…'제2 동양' 미리 막는다
주채무계열과 재무구조 개선약정 제도는 2002년 도입됐다. 외환위기 후 대우 기아 고합 등 그룹들이 줄줄이 쓰러져 경제에 큰 타격을 주자 개별 회사가 아니라 ‘그룹 단위’로 금융권이 기업을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10여년 만에 이 제도를 크게 손질하기로 한 이유는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동양그룹 현대그룹처럼 틈새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늘어나 제도의 실효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판단에서다.

◆주채무계열 13곳 늘어날 듯

[기업 부실 사전 방지] 은행, 대기업 감시망 확대…'제2 동양' 미리 막는다
금융위원회가 5일 발표한 개선안은 ‘제2의 동양그룹을 막는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위는 우선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을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전체 금융권 여신의 0.1% 이상(2012년 말 기준 1조6152억원)’인 곳에서 ‘0.075% 이상(1조2114억원)’인 곳으로 넓히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선정 대상 그룹이 올해(30곳)보다 13곳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동양그룹처럼 시장성 차입금이 많아 주채무계열에서 빠지는 경우에는 총차입금과 시장성차입금(회사채 기업어음) 규모를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일단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면 재무구조를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는 평가 기준을 현실에 맞게 대폭 바꾸기로 했다. 부채비율 구간을 세분화하고, 매출액영업이익률과 이자보상배율 항목에 3개년 단순 평균비율을 적용하는 대신 최근 사업연도에 더 높은 비중을 둬 가중 평균할 계획이다.

비재무 지표 평가 내용을 지수화해서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배구조 위험, 영업 추이 및 전망, 해외·금융계열사 상황, 우발채무 위험, 재무적 융통성 등 7개 항목별로 점수를 부여해 재무평가와 합쳐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은행빚 줄여도 약정 못 빠져

재무상태가 나쁜 그룹은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약정을 맺은 다음 재무구조가 좋아지지도 않았는데 빠지는 일이 없도록 체결 종료 기준도 까다로워진다. 원래는 그룹의 재무구조 평가점수가 부채비율에 따라 정해지는 기준점수를 충족하면 약정을 졸업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기준점수의 110%를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

동양그룹이나 현대그룹처럼 은행 빚을 줄이고 시장성 여신을 늘려 주채무계열 선정을 피하고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무력화하는 일을 막는 규정도 도입된다. 금융위는 약정을 이행하다 주채무계열에서 빠지는 그룹에 대해서는 애초 체결한 약정 종료 기간까지 ‘주채무계열에 준해’ 관리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김기한 금융위 구조조정지원팀장은 “은행빚을 회사채로 바꾸는 식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정’ 간신히 피한 그룹도 관리

주채무계열 선정 그룹 중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그룹도 ‘관리대상계열’로 지정돼 따로 관리받게 된다. 부채 구간별로 정해지는 기준점수는 충족하지만 110%를 넘지는 못한 그룹이 대상이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올해 선정된 30개 주채무계열 중 관리대상계열을 지정한다면 3개 그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대상계열로 지정되면 주채권은행과 정보제공 약정을 맺고 신규 사업 진출, 해외 투자 등을 은행과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수시 재무구조평가를 매년 8~9월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필요하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추가로 맺게 되고, 3년 연속 관리대상계열에 해당되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해야 한다.

정부는 또 약정 체결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막기 위해 STX 금호아시아나 대한전선 성동조선 등 구조조정(워크아웃·자율협약) 기업은 원칙적으로 약정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달 중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은행권 의견을 수렴해 내년 2월까지 규정 개정을 마무리하고, 내년 주채무계열 선정 때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