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주주 감시 소홀한 이사선임 반대"…강화된 의결권 지침
국민연금 "대주주 감시 소홀한 이사선임 반대"…강화된 의결권 지침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감시를 소홀히 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상장사 이사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로 하는 등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마련했다. 배임·횡령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그 이익을 조금이라도 누린 이사 후보자에게도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의 큰손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초법적 의무를 이사에게 강요하고 자의적 기준으로 이사 선임에 개입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오너 측근의 이사회 진입 견제

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상장사 이사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2013년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했다. 대기업 오너일가를 견제하기 위해 최대주주 감시를 소홀히 한 이사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고 비리를 저지른 오너들의 측근이 이사회에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한 게 특징이다.

국민연금은 또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시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해 국민연금 내부 인사 9명으로만 구성된 ‘투자위원회’ 결정 사항도 투자 기업의 주주총회 전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의결 내용만 주총 전에 알릴 수 있었지만 순수 내부 기구인 투자위원회가 결정한 의결권 행사 방향도 경우에 따라 사전 공개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한 이사 해임 건에 대해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결정에 따라 해당 기업의 주총 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내용을 공시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달까지 개정안에 대해 다른 정부부처와 외부 유관기관의 의견조회를 마무리한 뒤 이달 안에 내부 심의를 마치고 내달 중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기준 모호해 악용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최대주주 감시를 이사 의무로 두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현행 상법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회사에 손해를 미칠 염려가 있는 사실을 발견할 때 감사에게 보고하는 정도만 이사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는 기본법인 상법에 나와 있는 의무만 수행하면 되는데 이사들에게 본인들을 임명한 지배주주를 제대로 감시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배임·횡령 혐의자를 ‘직접적 수혜를 공동으로 향유한 자’로 넓게 해석한 조항도 형법 범위를 벗어난 규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곽관훈 선문대 법대 교수는 “형법에 배임·횡령의 주범과 종범, 교사범 등이 명시돼 있지만 그 어디에도 수혜를 공동으로 향유한 자에 대해선 나와 있지 않다”며 “국민연금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주총 전에 좀 더 쉽게 공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총 안건에 미리 반대표를 던지면 주총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며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주총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에 반하는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 해외 연기금과 달리 사외이사 재직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