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어코 연금사회주의로 발을 내디딜 태세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마무리해 다음달 시행에 들어간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상장사 이사의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내용이 하나같이 초법적이다. 상법의 취지와 주식회사 이사 제도의 근본 틀을 뒤흔들겠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개정안에는 지배주주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이사에 반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명백한 주주가치 침해라는 조건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무엇이 명백한 것인지는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의 자의적 판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 배임·횡령에 따른 직접적 이익을 공동으로 향유한 자의 이사선임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면 재단하기 어렵다. 더구나 가뜩이나 이현령비현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배임·횡령죄다.

공단 내부인사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의 결정사항을 개별기업 주총일 전에 공개하겠다는 것도 문제가 크다. 공단 측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건 이런 내부기구는 정부와 권력, 정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특정 안건에 미리 반대 공시라도 해버리면 주총 자체가 무력화되고 곧바로 정치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우려다.

불과 두 달 전 최광 이사장은 “국민연금 의결권은 신중하게 행사해야 하며, 연금사회주의는 단연코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이미 자본시장의 절대 강자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간판급 대기업들의 최대 주주이거나 2대 주주인 슈퍼 공룡이다. 공단 측은 선의라고 주장하겠지만 공단의 의결권 행사야말로 전형적인 주인·대리인 문제를 일으킨다. 굳이 그렇게 하려면 주총에 앞서 매번 연금가입자 총회부터 열어야 한다. 누구의 허락으로 대리인들이 제멋대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주주권도 과하다. 섀도 보팅이 공단의 유일한 선택이다. 연금공단까지 어깨에 힘주려 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