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161회 공간시낭독회에 초대받은 고(故) 피천득 선생(오른쪽 두 번째)이 박희진 시인(맨 오른쪽), 고 성찬경 시인(왼쪽 두 번째) 등과 함께한 사진.  공간시낭독회 제공
1993년 11월 161회 공간시낭독회에 초대받은 고(故) 피천득 선생(오른쪽 두 번째)이 박희진 시인(맨 오른쪽), 고 성찬경 시인(왼쪽 두 번째) 등과 함께한 사진. 공간시낭독회 제공
‘나는 그 시 낭독회에서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활자 매체에 의한 시의 시각적 전달과 아울러 원초적으로는 더 먼저였을 청각적 전달이 수반되어야 하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내가 고국에 돌아가면 시 낭독 운동을 펼쳐보리라는 마음속 다짐도 품게 되었다.’

2004년 작고한 구상 시인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미국 하와이대 초빙교수로 갔을 때 샌프란시스코에 잠깐 들렀다가 금문교 너머에서 시 낭독회를 하는 것을 보고 적은 단상이다. 1970년대 중반 귀국한 구 시인은 고(故) 성찬경 시인과 박희진 시인이 간혹 시 낭독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기투합했다.

여기에 건축가 김수근(1986년 작고)이 이렇게 제의하면서 ‘공간시낭독회’는 탄생했다. “내가 공간(空間)이라는 예술관을 지어 순수예술 공간으로 제공하려는데 구형! 당신이 한 번 정기적인 문학행사를 해보지 않겠소?”

1979년 4월7일 서울 원서동 공간그룹의 지하 소극장에서 세 시인이 각자 10편 정도의 자작시를 낭독하면서 시작된 공간시낭독회가 서울 남산 밑 ‘문학의집 서울’에서 7일 오후 5시 400번째 행사를 연다. 여느 때에는 첫 낭독회가 열린 원서동 바움아트갤러리에서 매월 첫째 목요일 오후 6시에 낭독회를 하지만 400회를 기념해 시간과 장소를 바꿨다. 축사와 시 낭송, 안숙선 명창의 축하공연이 벌어진다.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낭독회장을 맡고 있는 이인평 시인(사진)은 6일 “세계를 통틀어서도 400회, 30년 이상 꾸준히 이어져온 시 낭독회는 드물다”며 “활자뿐만 아니라 소리로도 독자와 청중에게 시를 전달하는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낭독회가 예전 같지는 않다. 10년 전만 해도 행사 때마다 100명 이상이 찾았지만 지금은 20~30명 정도에 그친다. 이 회장은 “청중이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힘든 점”이라며 “시의 가치가 사회와 문화에서 많이 멀어졌다는 방증”이라고 토로했다.

“기업체나 사회단체와 연계해 직접 찾아가는 시 낭송회도 모색할 생각입니다. 연극 등 극적인 요소를 좀 더 가미해서 낭송뿐 아니라 다양한 전달 방식도 생각하고 있고요. 쉽고 공감 가는 시로 직접 대중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시인들의 참여도 당부했다. 젊은 시인들이 문예지에만 시를 발표하며 활동하지만 그럴수록 대중과 더욱 괴리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낭독회 회원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이고 70~80대 고령 회원도 20%를 넘는다”며 “젊은 시인이 참여해 시의 대중화를 함께 모색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400회는 기쁘지만 어깨가 무겁습니다. 500회, 600회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낭독회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야말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해 건강하게 만들 특효약이라고 믿습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