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866년 11월12일 중국 광둥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양과의 교류 관문이었던 샹산에서 서당을 다니다 12세 때 형이 있던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신학문을 접했다. 홍콩으로 돌아와 의대를 졸업하고 개업의가 됐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데 있었다. 당시 중국은 아편전쟁에 이어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 왕조가 급속히 저물던 시기였다.
그의 혁명가 인생은 1894년 청조 타도를 기치로 내건 홍중회 결성과 함께 시작됐다. 이듬해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1900년 다시 봉기했으나 양광총독 리훙장(李鴻章)의 배신으로 또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해외로 눈을 돌린 쑨원은 1905년 일본에서 혁명세력을 규합, 중국동맹회를 결성했다. 총재에 오른 그는 출정식에서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강령으로 주창했다.
미국과 유럽을 돌며 열강 외교에 나선 쑨원은 1911년 신해혁명 성공과 함께 이듬해 세워진 중화민국의 대총통으로 추대됐다. 군사력이 부족했던 그는 청조 타도와 공화정 설립을 약속한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총통직을 넘겼으나 또다시 배신당했다. 1922년 군벌에 의해 축출된 쑨원은 소련의 도움으로 재기할 군사력을 갖게 됐지만, 그땐 이미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24년 북방 군벌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간암으로 입원해 이듬해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