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국민참여재판, 정치적 사건 배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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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부터 시행한 국민참여재판이 제도 도입 6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나꼼수의 박지만 씨 명예훼손, 안도현 시인의 대선 후보자 비방 등 정치적 성향이 짙은 사건에 대해 배심원들이 잇따라 무죄 평결을 내놓자 제도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명예훼손이나 선거법 위반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입법을 통해 참여재판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심원의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배경이 유ㆍ무죄나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주된 이유다. 법리가 복잡해 일반인이 판단하기에 적합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사건일수록 소수의 법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토론을 거쳐 유ㆍ무죄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영미 국가에 비하면 이제 걸음마 단계인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도 있다. 정치권도 여야가 찬반으로 양분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법무부가 참여재판 근거법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입법 예고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권고적 효력만을 지닌 배심원 평결에 대해 사실상의 기속력(법적 강제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뀔 경우 배심원단의 ‘감성평결’에 대해 판사가 판단할 여지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대법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개선책을 검토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국민참여재판에서 정치적 사건을 배제해야 하는지를 놓고 김선수 변호사와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찬반 입장을 들어봤다.
찬성 배심원 정치적 편견 개입, 사법 불신만 부추길 것
국민참여재판은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권유죄 유권무죄, 전관예우 등으로 인해 발생된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꼼수 진행자에 대한 사건 평결과 안도현 씨에 대한 사건 평결의 불공정성 문제가 불거져 또다시 사법 불신과 국론 분열이 초래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두 사건은 모두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언론 등을 통해 상대방 후보인 박근혜 후보 측을 인신공격한 내용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사건이다.
이번 두 사건 평결이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죄평결의 이유가 허위사실은 맞지만 이러한 말을 퍼뜨린 사람에게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사실에 대한 평결이 아니라 내심의 의사에 대한 평결이기 때문에 배심원이 자신의 정치 성향이나 편견 등에 따라 감성적으로 결정했다는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두 사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다. 재판 결과의 정의로움과 더불어 재판 과정의 공정성은 재판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공정성은 ‘재판관이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배심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을 믿을 수 있는지 여부 즉, 배심원이 편견 없는 사람인지 여부가 공정성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배심재판에서 문제가 되는 편견을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이해관계에 따른 편견’이다. 배심원이 사건과 관련해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으면 평결이 어떤 식으로든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한 편견’은 배심원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특정 사건을 접하게 되면 평결이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배심원이 일정한 집단으로 구성되는 경우 ‘일반적 편견’의 위험이 있다. 예를 들면 백인 또는 흑인, 남자 또는 여자, 자국민으로만 구성되는 경우를 말한다. 넷째 어떤 사건이 공동체와 중요한 이해 관계가 있으며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사건 처리에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경우 ‘일치성의 편견’에 빠질 수 있다.
배심원이 편견없는 지가 재판 공정성 가르는 잣대
이번 두 사건 재판을 살펴보면 혐의 내용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이미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보도됐다. 75.8% 국민이 2명 중 1명을 선택하기 위해 투표에 참여한 점, 다수 국민이 두 사건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에 비춰 배심원들도 익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배심원들이 특정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재인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안도현 시인 사건의 경우 전주지역 80% 이상 주민이 문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대다수 배심원과 피고인은 동일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배심원들이 ‘이해관계에 따른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공직선거법 등 정치적 사건은 항상 배심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은 영미식 배심제도와 달리 평결에 대한 만장일치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정치적 사건에 대한 배심원의 다수결에 따른 평결이 더욱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5 대 4의 무죄평결이 있었다. 이런 평결로 인해 일부 국민들은 ‘법적으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유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념과 지역이 사회 갈등의 중요 요소가 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대방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풍토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다수결 평결은 국론 분열을 더욱 가속화지속화고착화한다. 따라서 정치적 사건은 평의의 공개가 금지된 법관이 재판하는 것이 사법 신뢰나 국론 통합을 위해 타당하다. 즉,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배심원에 의한 평결보다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과 책임으로 사법부를 지키던 법관에 의한 재판이 사법 불신과 국론 분열을 줄이는 길이다.
정의의 여신이 왜 눈을 감고 있는가.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진행된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 재판이 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 5 대 4로 결정된 유죄 평결에서 4명의 배심원 결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민이 눈 뜨고 평결할 수밖에 없는 정치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는 가능하다.
무책임한 '커튼뒤의 평결'…이해관계따라 '오염' 가능성
영미식 배심재판에서 사실 인정은 배심원이 담당한다. 일반 국민도 법관과 동일하게 잘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법관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양형은 법률전문가인 판사가 담당한다. 양형을 규율할 법이 없는 우리나라는 양형이 사실상 법률영역이 아니다. 양형으로 인한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배심원의 관여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배심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과 거의 유사한 과거(1928~1943년) 일본의 배심제도가 배심원의 답변에 기속력을 부여하지 않은 조항 때문에 쇠락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배심원의 유ㆍ무죄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하되 배심원에게 편견이 존재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사건을 배제시켜야만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신뢰 속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법관의 형식적 판결보다 '국민의 상식' 반영 필요
역사는 국민참여재판(배심) 제도가 국가권력(특히 사법)에 의한 정치적 억압을 국민의 참여를 통해 견제하는 제도이며, 독재정권으로부터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민주주의에 친한 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정치적 탄압을 위한 기소에 대해 배심원들의 평결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엄호했다. 스페인과 러시아에서는 독재정권 시기에는 배심제도가 폐지됐다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 배심제도가 다시 시행됐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재판절차에 민주주의적 가치와 사회통념을 투영한다. 배심제도는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물론 일반 민형사사건에서도 국가권력이나 사회 지배세력, 그리고 국가에 의해 임명된 판사나 부패한 공무원의 편견에 대항하는 유일한 보호막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연방대법원은 배심제도에 대해 “피고인에게 자신의 동료인 배심원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부패하거나 공명심이 지나친 검사, 그리고 권력에 순응하거나 편견이나 괴벽에 빠진 법관에 대항하는 더없이 소중한 안전장치”라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국민참여재판은 국민들에 대해 법률교육을 수행하고 사법부의 역할을 이해시키며, 법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동료시민이 유무죄 판단…피고인도 결과에 승복
우리나라에서 국민은 재판의 대상이나 객체에 불과했고 재판의 주체로서의 위치에 서는 제도가 시행된 적이 없었다. 사법개혁의 중요 과제 중 하나로 ‘국민을 위한’ 사법에서 나아가 ‘국민에 의한’ 사법의 방법으로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돼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고인의 배심재판 받을 권리를 헌법상 권리로 보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법률상의 권리로 비로소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법정에서의 공방에 근거해 유ㆍ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절차가 필수적으로 시행되며, 재판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법조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된다. 또한 동료 시민들이 유ㆍ무죄를 판단하므로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경향이 높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연고주의와 동정심, 지역성, 민주적 토론의 부족 등을 지적하며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반대하는 견해들이 있었다. 특히 권위주의적 지배층이나 법조 엘리트들이 그런 견해를 강력하게 표명했었다. 시행 후의 경과에 비춰 보면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의 의하면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가 직업 법관의 결론과 같은 비율이 90%가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시행 성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대상을 확대하고 시행 횟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사회의 주목을 끄는 사건들도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무죄가 선고된 일부 국민참여재판 결과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바, 이는 배심원으로 참여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한 배심원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는 것은 피고인의 권리다. 피고인이 직업 법관 재판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무죄가 선고된다는 이유로 그러한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이 제 기능을 발휘할 중요 영역을 배제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재판 받을 권리 박탈…피고인 평등권 침범 '위헌'
지역에 따라 배심원들이 일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는 이유로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납득할 수 없다. 편향을 가진 배심원들을 걸러내기 위한 절차로 배심원 선정절차가 진행된다. 검사와 변호인은 선정절차에서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배제할 수 있다. 명예훼손이나 정치적 사건 등의 경우 법리가 복잡해서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러한 사건의 경우 직업 법관에 의한 형식적인 해석법학적 판단보다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 의한 목적론적 해석이 필요하고, 일반개념을 국민의 상식으로 보충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 정치적 사건의 범위를 정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런 불분명한 기준에 의해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이용권을 침해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으로 판단될 소지도 크다.
현 단계에서 국민참여재판 제도와 관련해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사건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개정해서 과도기적 단계를 벗어나 완성된 형태의 배심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배심원 평결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배심원 수를 현행 5명, 7명, 9명에서 원칙적으로 12명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 9명으로 하고 5명과 7명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 배심원들의 유죄평결을 위해서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4분의 3 이상의 의결을 얻도록 해야 한다. 배심원들의 평결에 원칙적인 기속력을 인정하고,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해서 법관이 무죄선고를 한 사건은 검사의 사실인정을 이유로 한 항소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도입함으로써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강화 및 확대해야 한다.
■ 읽을 만한 자료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안경환, 2005
△세계의 배심제도, 닐 비드마르, 2007
△미국 배심재판 제도의 연구, 김상준, 2003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사건일수록 소수의 법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토론을 거쳐 유ㆍ무죄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영미 국가에 비하면 이제 걸음마 단계인 만큼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도 있다. 정치권도 여야가 찬반으로 양분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법무부가 참여재판 근거법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입법 예고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권고적 효력만을 지닌 배심원 평결에 대해 사실상의 기속력(법적 강제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뀔 경우 배심원단의 ‘감성평결’에 대해 판사가 판단할 여지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대법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개선책을 검토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국민참여재판에서 정치적 사건을 배제해야 하는지를 놓고 김선수 변호사와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찬반 입장을 들어봤다.
찬성 배심원 정치적 편견 개입, 사법 불신만 부추길 것
국민참여재판은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권유죄 유권무죄, 전관예우 등으로 인해 발생된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꼼수 진행자에 대한 사건 평결과 안도현 씨에 대한 사건 평결의 불공정성 문제가 불거져 또다시 사법 불신과 국론 분열이 초래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두 사건은 모두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언론 등을 통해 상대방 후보인 박근혜 후보 측을 인신공격한 내용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사건이다.
이번 두 사건 평결이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죄평결의 이유가 허위사실은 맞지만 이러한 말을 퍼뜨린 사람에게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사실에 대한 평결이 아니라 내심의 의사에 대한 평결이기 때문에 배심원이 자신의 정치 성향이나 편견 등에 따라 감성적으로 결정했다는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두 사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다. 재판 결과의 정의로움과 더불어 재판 과정의 공정성은 재판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공정성은 ‘재판관이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배심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을 믿을 수 있는지 여부 즉, 배심원이 편견 없는 사람인지 여부가 공정성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배심재판에서 문제가 되는 편견을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이해관계에 따른 편견’이다. 배심원이 사건과 관련해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으면 평결이 어떤 식으로든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한 편견’은 배심원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특정 사건을 접하게 되면 평결이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배심원이 일정한 집단으로 구성되는 경우 ‘일반적 편견’의 위험이 있다. 예를 들면 백인 또는 흑인, 남자 또는 여자, 자국민으로만 구성되는 경우를 말한다. 넷째 어떤 사건이 공동체와 중요한 이해 관계가 있으며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사건 처리에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경우 ‘일치성의 편견’에 빠질 수 있다.
배심원이 편견없는 지가 재판 공정성 가르는 잣대
이번 두 사건 재판을 살펴보면 혐의 내용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이미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보도됐다. 75.8% 국민이 2명 중 1명을 선택하기 위해 투표에 참여한 점, 다수 국민이 두 사건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에 비춰 배심원들도 익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배심원들이 특정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재인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안도현 시인 사건의 경우 전주지역 80% 이상 주민이 문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대다수 배심원과 피고인은 동일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배심원들이 ‘이해관계에 따른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공직선거법 등 정치적 사건은 항상 배심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참여재판은 영미식 배심제도와 달리 평결에 대한 만장일치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정치적 사건에 대한 배심원의 다수결에 따른 평결이 더욱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5 대 4의 무죄평결이 있었다. 이런 평결로 인해 일부 국민들은 ‘법적으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유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념과 지역이 사회 갈등의 중요 요소가 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대방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풍토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다수결 평결은 국론 분열을 더욱 가속화지속화고착화한다. 따라서 정치적 사건은 평의의 공개가 금지된 법관이 재판하는 것이 사법 신뢰나 국론 통합을 위해 타당하다. 즉,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배심원에 의한 평결보다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과 책임으로 사법부를 지키던 법관에 의한 재판이 사법 불신과 국론 분열을 줄이는 길이다.
정의의 여신이 왜 눈을 감고 있는가.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진행된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 재판이 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 5 대 4로 결정된 유죄 평결에서 4명의 배심원 결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민이 눈 뜨고 평결할 수밖에 없는 정치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는 가능하다.
무책임한 '커튼뒤의 평결'…이해관계따라 '오염' 가능성
영미식 배심재판에서 사실 인정은 배심원이 담당한다. 일반 국민도 법관과 동일하게 잘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법관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양형은 법률전문가인 판사가 담당한다. 양형을 규율할 법이 없는 우리나라는 양형이 사실상 법률영역이 아니다. 양형으로 인한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배심원의 관여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배심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과 거의 유사한 과거(1928~1943년) 일본의 배심제도가 배심원의 답변에 기속력을 부여하지 않은 조항 때문에 쇠락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배심원의 유ㆍ무죄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하되 배심원에게 편견이 존재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사건을 배제시켜야만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신뢰 속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 법관의 형식적 판결보다 '국민의 상식' 반영 필요
역사는 국민참여재판(배심) 제도가 국가권력(특히 사법)에 의한 정치적 억압을 국민의 참여를 통해 견제하는 제도이며, 독재정권으로부터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민주주의에 친한 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정치적 탄압을 위한 기소에 대해 배심원들의 평결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독립운동을 엄호했다. 스페인과 러시아에서는 독재정권 시기에는 배심제도가 폐지됐다가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 배심제도가 다시 시행됐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재판절차에 민주주의적 가치와 사회통념을 투영한다. 배심제도는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물론 일반 민형사사건에서도 국가권력이나 사회 지배세력, 그리고 국가에 의해 임명된 판사나 부패한 공무원의 편견에 대항하는 유일한 보호막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연방대법원은 배심제도에 대해 “피고인에게 자신의 동료인 배심원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부패하거나 공명심이 지나친 검사, 그리고 권력에 순응하거나 편견이나 괴벽에 빠진 법관에 대항하는 더없이 소중한 안전장치”라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국민참여재판은 국민들에 대해 법률교육을 수행하고 사법부의 역할을 이해시키며, 법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동료시민이 유무죄 판단…피고인도 결과에 승복
우리나라에서 국민은 재판의 대상이나 객체에 불과했고 재판의 주체로서의 위치에 서는 제도가 시행된 적이 없었다. 사법개혁의 중요 과제 중 하나로 ‘국민을 위한’ 사법에서 나아가 ‘국민에 의한’ 사법의 방법으로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돼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고인의 배심재판 받을 권리를 헌법상 권리로 보장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법률상의 권리로 비로소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법정에서의 공방에 근거해 유ㆍ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절차가 필수적으로 시행되며, 재판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법조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된다. 또한 동료 시민들이 유ㆍ무죄를 판단하므로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경향이 높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연고주의와 동정심, 지역성, 민주적 토론의 부족 등을 지적하며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반대하는 견해들이 있었다. 특히 권위주의적 지배층이나 법조 엘리트들이 그런 견해를 강력하게 표명했었다. 시행 후의 경과에 비춰 보면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의 의하면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가 직업 법관의 결론과 같은 비율이 90%가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시행 성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대상을 확대하고 시행 횟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사회의 주목을 끄는 사건들도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무죄가 선고된 일부 국민참여재판 결과에 대한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바, 이는 배심원으로 참여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한 배심원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는 것은 피고인의 권리다. 피고인이 직업 법관 재판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무죄가 선고된다는 이유로 그러한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이 제 기능을 발휘할 중요 영역을 배제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재판 받을 권리 박탈…피고인 평등권 침범 '위헌'
지역에 따라 배심원들이 일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는 이유로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납득할 수 없다. 편향을 가진 배심원들을 걸러내기 위한 절차로 배심원 선정절차가 진행된다. 검사와 변호인은 선정절차에서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배제할 수 있다. 명예훼손이나 정치적 사건 등의 경우 법리가 복잡해서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러한 사건의 경우 직업 법관에 의한 형식적인 해석법학적 판단보다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 의한 목적론적 해석이 필요하고, 일반개념을 국민의 상식으로 보충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 정치적 사건의 범위를 정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런 불분명한 기준에 의해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이용권을 침해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으로 판단될 소지도 크다.
현 단계에서 국민참여재판 제도와 관련해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사건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개정해서 과도기적 단계를 벗어나 완성된 형태의 배심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배심원 평결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배심원 수를 현행 5명, 7명, 9명에서 원칙적으로 12명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 9명으로 하고 5명과 7명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 배심원들의 유죄평결을 위해서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4분의 3 이상의 의결을 얻도록 해야 한다. 배심원들의 평결에 원칙적인 기속력을 인정하고,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해서 법관이 무죄선고를 한 사건은 검사의 사실인정을 이유로 한 항소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도입함으로써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강화 및 확대해야 한다.
■ 읽을 만한 자료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안경환, 2005
△세계의 배심제도, 닐 비드마르, 2007
△미국 배심재판 제도의 연구, 김상준, 2003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