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신작 '아인슈타인', 캡에 플래티늄 도금선 통해 그가 발견한 시공간 곡률 표현. 3000개만 한정 제작.
2013년 신작 '아인슈타인', 캡에 플래티늄 도금선 통해 그가 발견한 시공간 곡률 표현. 3000개만 한정 제작.
몽블랑 만년필은 유명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재킷 안에 꽂혀 있는 ‘명품 필기구의 대명사’다. 1906년 독일에서 탄생한 이 브랜드는 만년설로 뒤덮인 유럽의 가장 높은 산인 해발 4810m 몽블랑에서 이름을 따 왔다. 이 산의 여섯 봉우리를 형상화한 ‘화이트 스타’로 잘 알려져 있다.

역사와 품격의 상징인 몽블랑은 클래식한 만년필에 다양한 디자인을 덧입혀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특별한 재능을 통해 인류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한정판 펜, ‘그레이트 캐릭터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만년필에 다빈치가 숨어 있다

많은 명품 브랜드가 한정판을 쏟아내지만, 몽블랑 만년필의 한정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몽블랑이 이달 초 국내에 선보인 그레이트 캐릭터 에디션의 최신작 ‘레오나르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에 헌정하는 펜이다. 낙하산, 핸드 글라이더, 헬리콥터에 이르기까지 다빈치가 연구했던 각종 비행장치를 펜의 곳곳에 담아냈다.

이 펜의 캡(상단)과 배럴(몸체)에는 항공기를 만들 때 쓰는 양극 처리 알루미늄 소재를 썼다. 플래티넘 장식은 다빈치가 두 개의 다른 자재를 조립할 때 사용한 쐐기 연결장치를 상징한다.

콘(하단)을 통해서는 500년 전 다빈치가 선구적으로 창조한 자동차 무단 변속기를 보여주고 있다. 화이트 스타 로고가 뚜껑 안에 숨겨져 있는 점도 독특하다. 뚜껑 윗부분의 안쪽에 있는 거울을 통해 반사된 로고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글씨를 거꾸로 써서 거울로 비춰야만 읽을 수 있도록 했던 다빈치의 거울 글씨(mirror writing)를 표현한 것이다. 3000개만 생산했으며 가격은 개당 450만원.

●간디·히치콕·아인슈타인과 만나다

2009년 내놨던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비폭력주의 지도자 간디(1869~1948)를 위한 것이다. 이 펜에는 실을 여러 번 감아 만든 장식이 있는데, 영국으로부터 인도 섬유산업을 지키고자 물레를 지었던 그의 모습을 상징한다. 만년필 촉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간디의 모습도 그려넣었다.

지난해 나온 ‘앨프리드 히치콕’은 스릴러 영화의 대가인 영국 히치콕 감독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영화 ‘현기증’에 등장하는 어두운 계단이 전반적인 디자인의 소재다.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기로 악명(?) 높았던 이 감독의 ‘현기증 효과(vertigo effect)’를 떠올리게 한다. 클립은 영화 ‘사이코’에 나온 섬뜩한 칼 모양이다. 또 펜촉에는 히치콕의 자화상 스케치가 그려져 있는데, 영화 ‘로프’에서 아파트 창밖에 펼쳐진 도시의 네온사인에 자신의 자화상 스케치를 담아 두었던 장면을 따온 것이다.

올초 출시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만년필은 전 세계 3000개만 제작했는데,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²’ 를 통해 드러난 빛의 속도(초당 3억m)에서 따온 것이다. 캡에 장식한 플래티넘 도금선을 통해 그가 발견한 시공간 곡률(space-time curve)을 표현하고 있다. 몸체에 그가 남긴 유명한 과학공식이 새겨져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펜’

몽블랑 펜촉에 새겨진 문양은 스탬핑(stamping) 작업을 통해 찍어낸다. 한정판 제품의 경우 정해진 수량의 생산을 마치면 펜촉에 사용한 스탬프를 모두 파기한다고 한다. 똑같은 디자인을 생산할 수 없도록 해 상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한 것이다. 장인들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몽블랑의 모든 펜은 전 세계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라고 몽블랑은 강조한다.

모든 몽블랑 제품은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장인들의 제작 과정을 웹캠을 통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 주문제작을 이용하는 VIP 중 상당수는 몽블랑 아틀리에를 직접 방문해 제작 과정을 지켜본다고 한다. 의뢰할 수 있는 디자인과 소재엔 어떤 제약도 없다. 장인과 고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난이도’ 명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몽블랑의 또 다른 매력이다.

펜촉에만 100단계 공정…'8'자 그리며 깐깐한 품질검사

몽블랑 만년필은 펜촉에만 100단계 이상의 제작 공정을 거친다.

펜촉은 금(gold)과 이리듐(iridium)으로 만든다. 펜촉 전체를 금으로 만들면 끝이 금세 무뎌지는 탓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끝 부분에 단단한 이리듐을 쓴다. 또 금은 24K가 아닌 18K짜리를 사용한다. 순도가 너무 높으면 펜촉이 쉽게 물러져서다. 이 두 가지 소재 외에 미적 요소를 위해 플래티넘, 로듐 등으로 도금하기도 한다.

완성된 펜은 곧바로 매장에 보내지지 않고 납 테스트 전문가에게 간다. 펜을 손에 쥐고 ‘8’자를 계속 그리며 필기감을 검사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어떤 각도로, 어떤 방식으로 필기를 해도 완벽하게 부드러운지 확인한다. 또 잉크가 새진 않는지 눈으로 보고, 종이에 잉크가 스며드는 작은 소리까지 귀로 듣는다. 모든 만년필에 이런 전수검사가 이뤄진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