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민주주의의 미래
‘민주주의’의 수난시대다. 얼마 전 한 아이돌 가수가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무언가를 억눌러서 획일화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시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배웠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신념으로 체화돼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의 왜곡된 ‘민주화’ 사용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사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애초부터 많은 선각자들이 제기해왔던 문제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약 200년 전인 1835년, 프랑스의 젊은 판사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명저를 출판했다. 혁명과 반혁명으로 혼란스럽던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미래가 반드시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불평등한 자유보다는 평등한 노예 상태를 원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부드러운 독재(mild despotism)로 변질된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함에 따라 나타나는 독재는 강압적인 독재보다 더 위험하다는 경고였다.

토크빌보다 2200년 앞선 기원전 400년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목격하고 ‘중우정치(mobocracy)’의 위험을 경고했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대세인 지금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포퓰리즘은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국에서는 GM, 포드, 씨티뱅크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사실상 국유화됐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시장경제체제가 흔들리는 이 같은 현상은 민주주의의 위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최선의 제도라는 우리의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독립되고 성숙한 개인만이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정몽준 <국회의원·새누리당 mjchung@n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