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판 김우중法' 나오나
국세청이 금융재산 일괄조회 범위를 체납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자녀, 부모, 거래 당사자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른바 ‘국세청판 김우중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10일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적, 조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체납자 본인과 가족 등 주변 관계자의 재산을 조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정리 체납액 5년간 70% 증가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은 제4조 1항에서 1000만원 이상 체납한 체납자 본인에 한해 금융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고액·악성 체납자의 경우 본인 계좌만 조회할 수 있어 배우자나 자녀, 부모 등의 명의로 재산을 은닉하면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체납 세금을 내지 않은 채 고급 외제차를 몰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악성 체납자들이 다수 있다”며 “하지만 이들은 미리 가족 명의 계좌 등으로 재산을 빼돌려 놓았기 때문에 징수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구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이 징수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체납 세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8년 19조3560억원이던 연간 체납액(체납 세금 총액)은 2009년 20조6685억원으로 2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5조2058억원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 상반기까지 발생한 체납액은 16조861억원으로 연말까지 30조원 안팎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국세청이 회수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미정리 체납액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08년 3조9080억원이던 미정리 체납액은 올 상반기 현재 6조6591억원으로 불어났다. 5년 만에 70.3%나 늘어난 것이다.

○금융위는 신중한 입장

국세청은 체납자 가족 등 주변 인물에 대한 금융재산 조회가 가능해질 경우 체납 세금을 징수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법상의 규정 중 체납자 규정과 1000만원 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와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즉 체납자에 대한 정의를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등 가족이나 거래 당사자로 넓히고, 체납액 기준을 1000만원보다 하향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국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달 열린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나성린 의원(새누리당)은 “고액·악성 체납자 대부분이 배우자나 가족에게 재산을 돌려 놓고 있는 만큼 본인에 대해서만 재산 조회가 가능토록 돼 있는 조항에 대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위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실제 관련 법이 개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국세청과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않아 명확히 정해진 방침은 없다”면서도 “배우자나 자녀로까지 대상을 확대하면 개인정보 침해나 비밀보장 위반 등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법 개정이 전면적인 개인정보 침해 논란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국세청도 바라지 않는 방향이다. 이에 국세청은 일부 악성 체납자나 명단이 공개된 체납자 등 일부에 대해서만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