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영화의 원칙과 함정
생산수단의 국유화에 관해서는 정권이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민영화의 원칙이 달라진다. 교조사회주의 정권이면 모든 생산시설이 국유화돼야 하고, 자유기업주의 정권이면 가급적 모든 생산시설은 민영화돼야 한다. 한국은 헌법에서 자유기업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민영화를 추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유기업제도는 시장기능이 작동한다는 전제하에 존립하는 것이므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분야가 민영화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면 일단 좋은 출발점에 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시장과 정부의 역할, 시장의 실패에 관한 관점이 서로 달라서 의견 일치가 어려울 수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에 관한 입장 차이가 좋은 예다. 산업은행이 금융자원의 동원, 배분과정에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공공기능을 수행하길 기대하면 민영화 대상이 아니고, 산업은행으로부터 공공기능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민영화 대상이 된다. ‘자연독점’ 상태에 있는 기업도 민영화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에 여러 개의 전력공급망이 있는 것은 자원낭비니 한 개의 조직으로 일원화하되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철도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독점이 불가피한 망산업(network industry)을 민간경쟁에 맡기면 개인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거나, 중복투자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공기업 민영화 논의는 비교적 원칙에 충실했다고 보여지지만 이념 스펙트럼에 차이가 있는 정권이 교차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민영화는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큰 고민 없이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례도 목격되고 있다. 주택은행 민영화가 그 예다. 주택은행은 서민주택자금, 중소건설업체의 사업자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책은행이었는데 민영화됐다. 자유기업제도의 메카인 미국에도 국영주택금융기관이 존재하고 있는데 꼭 민영화했어야 했는지 최근의 주택시장 상황을 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어느 정권이나 예외 없이 중소기업 육성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중소기업은행’이었던 상호를 ‘기업은행’으로 바꾸고 완전 민영화를 예외 없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앞뒤가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민영화 원칙을 논의할 때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최근 불거진 한국수력원자력의 비리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민영화를 고려할 것인지에 관한 답을 도출하는 과정에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건을 대입하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을 소유·관리하는 회사는 도쿄전력이라는 민간회사다. 후쿠시마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된 이유가 원자로의 폭발을 막기 위해 바닷물을 주입하라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즉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 도쿄전력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왜 시간을 끌었을까. 도쿄전력이 국유회사였다면 신속한 결정이 이뤄졌을까.

민영화 원칙은 시장에서 출발하지만 ‘국민 안전’이라는 시장과 친숙하지 않은 개념도 고려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이나 외환위기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할 경우 국내 기업의 자금력이 부족해 외국 기업이 기간산업을 장악하는 것도 민영화의 함정이다.

디테일에 약하면 시장과 민간의 역할이 만병통치약인양 강조하며 손 놓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민간 개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공익을 지키는 공직이 필요하고 공기업도 필요한 것이다. 디테일에 약한 자들의 방패인 시장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최중경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