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위기론은 과장…실제론 그리 나쁘지 않을 것
美양적완화 2014년 봄 축소…유동성 공급 기조는 유지
불황은 좋은 기업 골라낼 기회…삼성·현대차 잘한다"
하지만 한스 파울 뷔르크너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회장은 이 같은 고민에 대해 “선진국에서는 연 2~3%대 성장률이 그리 낮은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처럼 글로벌 회사가 돼 세계를 시장으로 삼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2004년부터 9년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BCG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했으며, 작년부터는 회장을 맡고 있는 BCG의 리더다.
뷔르크너 회장은 내년 이후 세계 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하는 중이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위기론도 지나치게 부각된 점이 있다”며 “실제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는 내년 봄으로 점쳤지만 이후에도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추세를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글로벌 인재포럼 2013’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6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만났다.
▷한국의 주요 기업을 방문해서 느낀 점은.
“지난 수년간 한국 기업에는 빠른 성장이 절대적인 화두였는데 요즘은 ‘균형’이 화두인 것 같습니다. 재무구조 지배구조 등을 두루 고민하며 내실을 기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글로벌 전략도 전에는 빨리 따라잡는 것 위주였는데, 지금은 글로벌 경쟁사들과 직접 시장에서 부딪치면서 자신만의 강점을 고민하는 것이 보입니다.”
▷주로 어떤 질문을 받았습니까.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많이 물어보더군요. 특히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할지와 북미지역 성장이 계속될지 등에 관심이 높았고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기업과 경쟁 관계인 곳이 많다 보니 엔화 전망에 대한 질문도 자주 나왔습니다.”
▷내년 경제 전망은 어떻게 답하셨나요.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 7.5% 안팎을 유지할 것이고 인도도 5~6% 성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유럽은 1~1.5% 정도 성장을 예상하는데 잘하면 2%도 될 수 있다고 보고요. 미국도 올해보다 높은 3%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경제는 살아나는 중입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내년 봄 정도에는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 유동성이 과도해 부동산이나 원자재 등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가 일부 축소되면 성장통이 좀 있겠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후에도) 계속 많은 유동성을 공급해야 합니다. 일본과 유럽도 오랫동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제 거의 끝났다고 봅니까.
“아닙니다. 절반 정도 왔다고 봐야죠. 5년 정도는 더 있어야 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각국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건가요.
“10가지 변화의 방향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10가지를 줄줄이 읊었다.) 교육 투자, 이민자 수용,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 기업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 연구개발(R&D) 및 인프라 투자, 시장 개방, 보조금·복지 축소, 투명한 세금 징수,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은 저성장 국면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가 ‘저성장’인가요? 낮은 성장률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한국은 인구 증가가 정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가운데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저성장 기조에 대응하는 방법을 물으면 제 답은 간단명료합니다. ‘글로벌 회사가 돼라.’ 선진국의 다른 기업들도 다 해외에서 경쟁하고 해외에서 돈을 법니다.”
▷한국 기업들은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 전략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장을 선도하려면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다 해 보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결국 누군가는 성공할 것입니다.”
▷해외 인수합병(M&A)을 고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M&A를 할 때는 절대로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가 뚜렷해야죠. 어떤 시장에 침투하기가 쉽지 않을 때 M&A를 고려하는데 잘못되면 스스로의 목줄을 죄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기업을 소개한다면.
“다른 나라를 볼 것 없이 삼성이나 현대·기아자동차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삼성은 잘 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시장도 있지만 에너지 산업이나 헬스케어 산업에 투자하며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현대·기아차가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가는 것도 평가할 만합니다. 불황이 오면 침체되고 성장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불황기에도 성장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애플은 성장했습니다. BCG도 2004년부터 매해 실적이 늘었습니다. 불황은 ‘정말 좋은(very good)’ 회사와 ‘괜찮은(OK)’ 회사를 구분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창의적인 회사가 불황에 성장하는 진짜 좋은 회사입니다.”
▷한국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유럽에서도 연금이나 보조금, 복지를 늘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침체를 불러올 뿐입니다. ‘평등한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과 훈련받을 기회를 줘서 일자리를 갖게 해야 합니다.”
▷경쟁을 제한하려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한국은 상당히 폐쇄적인 경제입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더 많이 경쟁해야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커집니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지하경제 양성화가 ‘경기 부양’ 기조와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혀 어긋나지 않는 문제입니다. 세금은 단순해야 합니다. 세제를 간소화하고 세율을 낮춰야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습니다. 경기 부양 기조와도 맞아떨어집니다.”
▷고령화로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숙련된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입니다.”
■ 한스 파울 뷔르크너 BCG 회장은
1952년 독일 파렐에서 태어났다. 1981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독일 뒤셀도르프 지사를 열 때 BCG 멤버로 합류해 32년째 몸담고 있다. BCG는 파트너들이 한 표씩 행사해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한다. 글로벌 재무서비스 부문장 및 수석부사장을 지낸 뷔르크너 회장은 2004년에 CEO로 선출됐다.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해 총 9년 동안 BCG를 진두지휘했다. CEO로 재임하는 동안 한 번도 회사의 수익이 줄지 않았고 대규모 직원 감축도 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 파트너들의 회의 기구를 이끄는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 사무소를 두고 고객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주로 기업의 경영 전략, 글로벌 확장 정책, 조직 운영 등에 관해 조언한다. 매년 43개국에 있는 BCG 지사 중 상당수를 방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독일 보훔대 등에서 경제학·경영학·중국어 학사를 딴 뒤 미국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