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 사이러스 대표(29)가 그리는 회사의 방향은 뚜렷하다. 그는 태국 시장에 한국 K팝이 아닌 인디음악을 들려준다. 국내 배고픈 인디 밴드들에게는 해외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태국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음악 저작권료로 수익을 챙겨도 모자를 판에 무료로 서비스한다. 미래를 위해서다.
황 대표는 "지금은 꿈을 위해 투자하는 기간"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 당당함은 당장 리스크를 감내하더라도 태국에서 새로운 음악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 "스타트업은 '미래'를 판다"
황 대표가 처음부터 태국 음원시장에 도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시절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혁신기업의 딜레마'와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 경제학'을 읽고, 파괴적인 혁신이 있는 분야는 음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 음악시장은 불법 음원공유, 저작권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음악 플랫폼 사업을 시작해 보려고 하니 국내 음원시장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이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한 지인이 스타트업은 현실이 아니라 '미래'를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겁니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어요. 국내에서 치고 박고 싸우지 말고, 해외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아닌 태국 시장을 택했다. 주변에서는 '대체 왜'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태국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2011년 말에는 1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29%까지 올랐습니다. 현재는 40~50%에 달하고요.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제일 높은 수치죠. 그런데 싱가포르는 인구 수가 너무 적습니다. 태국 인구수는 6800만명으로 우리나라 보다 많죠. 3G 네트환경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시장을 분석해보니 미국보다 태국에서 승산이 있었습니다"
특히 태국 시장은 국내 스타트업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태국 IT기업들도 태국판 '카카오톡'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기술이 뒷받쳐주지 않아요. 몇 천만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을 만한 서버를 관리하는 기술도 부족하고요. 기술이 발전한 미국은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하고 동남아는 쳐다보지 않거든요. 국내 스타트업으로서는 경쟁자 수도 줄어드니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 "태국에서는 인디 음악이 주류" 하지만 국내에서도 접하기 힘든 인디음악을 태국 시장에 소개한다는 사업 아이템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황 대표는 태국에서 부는 K팝 열풍이 오히려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슈퍼쥬니어나 원더걸스는 대형 연예기획사가 뒷받침 해주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서 진출한 겁니다. 예전 J팝 자리를 K팝이 빠르게 대체하면서 한류 열풍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태국에서는 록 장르가 주류 음악이거든요. 일렉트로닉이나 힙합 등 장르도 우리나라에서는 비주류에 속하지만, 태국에서는 두루두루 인기가 많아요. 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줄 때가 된겁니다."
황 대표의 이러한 생각은 국내 인디 밴드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졌다. 국내 인디 밴드들은 국내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지만, 해외 시장에 진출한 경험과 묘수가 없던 상태였다. 그는 2012년 10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라우드박스(LoudBoX)'를 출시하며 해결사를 자처했다.
'라우드박스'는 일종의 쥬크박스다. 황 대표가 국내 인디음악 기획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위 20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인디 밴드 50여개팀의 음원을 확보했다. 브로콜리너마저와 에피톤프로젝트, 가을방학 등 국내에서도 친숙한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태국에서 페이스북 회원이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공략, 2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단기간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비밀은 '스트리밍(온라인 재생)' 서비스에 있다.
"태국사람들이 일단 한국 인디 음악을 듣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태국에서는 아직까지 음원 불법 유통이 만연하고, 불법 CD도 많습니다. 하지만 PC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오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우선 지금은 '팬'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 '웹'에서 '앱'으로…수익 모델 고민
황 대표는 이달 말 태국에서 '라우드박스' 앱도 출시할 예정이다. 모바일 시대에 맞춰 '웹'으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앱'으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 페이스북 연동 서비스로는 접근성이 유효하지 않아 곧 앱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앱을 출시하면서 여러가지 유료화 모델도 시험해 볼 계획이에요. 태국에서는 무료 서비스에 삽입된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광고 클릭률도 매우 높습니다. 노래 3곡을 들은 후 광고를 듣게 하거나, 앱 상단과 하단에 모두 배너 광고를 넣는 형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추후 곡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 다만 애플 앱스토어에서 떼어가는 수수료(약 30%)를 제외하고는 음원 제작자 측에 모든 수익을 넘겨 줄 생각이다.
"그만큼 앱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광고 수익모델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는 초당 과금하는 수익모델도 고려하고 있어요. 한 곡이더라도 이용자가 들은 시간만큼 이용료를 내게 하는 것이죠. 시간 배분을 좀더 정확히하고, 수익 배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도하려고 합니다."
황 대표는 평소 생각하고 상상하던 것들이 현실화 되는 것을 즐기고, 또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스타트업 중에서도 남다른 사업 DNA를 가진 그는 "위험할수록 경쟁자가 적기 때문에 안전하다"며 "저뿐 아니라 인디 밴드들은 지금까지 투자기간이라고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