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14일 “자본시장을 육성해야 한국 국민소득을 1인당 3만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14일 “자본시장을 육성해야 한국 국민소득을 1인당 3만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정부가 금융업을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육성산업으로 바라보려는 인식의 전환이 꼭 필요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 사례만 봐도 자본시장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할 때 항상 촉매 역할을 했지요.”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66)은 14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7년부터 2만달러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데, 3만달러로 도약하기 위해선 금융산업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현재 7% 수준에서 1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국민소득 3만달러에 도달했을 때 자국 내 금융산업 기여도는 11%였고, 영국은 16%였다고 했다.

박 회장은 “글로벌 악재가 발생한 이후 충격에서 가장 빨리 회복하는 나라는 예외없이 자본시장 선진국”이라며 “당국이 금융업의 부가가치를 10년 안에 GDP 대비 10%까지 높인다는 금융비전 10-10 밸류업 계획을 짜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5년 내로 확 앞당기면 좋겠다”고 했다.

옛 대한증권업협회(현 금투협회) 설립일을 기점으로 오는 25일 60주년을 맞게 되는 국내 자본시장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업권 내에서 은행권 쏠림현상이 지나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기업들의 은행 차입금 대비 직접 금융 이용 비중이 70~80%에 달하는데, 유독 한국에선 10~20%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 대다수가 주식이나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업권 간 시너지를 내도록 하자는 취지로 도입한 금융지주회사 제도만 보더라도 여전히 은행 중심”이라며 “이렇다 보니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등 전체 62개 증권사의 순이익이 신한은행 한 곳보다도 적다”고 설명했다. 2012회계연도에 전체 증권사가 기록한 순이익은 1조2000억원으로, 신한은행(1조6000억원) 대비 75% 수준에 불과했다.

그는 “정부가 제조업 및 은행 중심의 금융정책을 펴온 데다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위주의 영업방식을 고수한 결과”라며 “자본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의 23분의 1, 일본의 7분의 1에 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자본시장이 질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연기금과 은행 보험사 등이 든든한 기관투자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 말 기준으로 조사해 보니 미국의 기관투자가 비중은 47.2%, 일본은 30%인 데 비해 한국은 15.8%에 그쳤다”며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돈을 굴릴 곳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자금 부족에 허덕이는 자본시장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년간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어 연기금과 보험사 등도 자본시장에서 적극적인 추가 수익을 추구할 만하다는 조언이다.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은행(IB)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 박 회장은 “한국형 IB들이 우리 경제의 새 활력소가 될 게 분명하다”며 “다만 IB의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로 제한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을 고쳐 40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IB가 나올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지만 자기자본 규제 등이 여전해 대형 증권사들이 선뜻 IB 업무를 확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했다.

최대 현안인 동양그룹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 회장은 “동양그룹 채권을 판매한 동양증권 직원들이 애초 소비자를 대상으로 꼼꼼하게 상품 설명을 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투자상품에 대해 다 물어내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문 판매제도를 합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자문 판매제도는 독립 금융회사가 소비자 입장에서 금융상품을 골라주고 컨설팅비 등 일정 대가를 받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금융상품 제조사와 소비자 간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보편화돼 있다.

조재길/하수정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