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김우중 추징法' 바람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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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친·인척이나 측근의 재산 추징을 쉽게 하는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범죄수익 은닉 규제·처벌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범죄로 얻은 이익과 관련이 있는 제3자 소유 재산에 대해 별도 법원 판결을 거치지 않고도 추징·환수할 수 있게 한 게 핵심이다. 법무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거액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대기업 총수 등 사회 지도층을 겨냥해 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김우중 추징법’을 둘러싼 논란은 적지 않다.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 우선 김 전 회장에게 부과된 17조9253억원의 천문학적인 추징금 성격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선 김 전 회장이 경영 실패로 국가를 부도 위기에 몰아넣은 만큼 추징금을 하루빨리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전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숨겨뒀을 것이란 의혹이 있는 만큼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추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반대하는 쪽에선 김 전 회장이 비록 실패한 경영자지만 개인적으로 횡령하거나 착복한 재산은 없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정한 추징금이 실제로 환수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징벌’ 성격이 강한 만큼 추징법까지 만드는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
추징법을 두고 빚어지는 논란의 핵심은 위헌 여부다. 법원 판결 없이 환수하는 건 명백한 위법이라는 주장과 추징법에서 명시한 건 ‘제3자 명의로 은닉된 범죄수익이나 불법 재산’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김우중 추징법을 놓고 백윤기 아주대 법대 학장과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가 맞붙었다.
이태명/정소람 기자 chihiro@hankyung.com
찬성 "3者 명의 은닉 재산에 한정…추징금 집행기준 동일해야"
최근 정부는 추징금 미납자에 대한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대한 정책적 결정을 내렸다. 추징금 미납자가 제3자 명의로 은닉한 불법재산에 대해 추징 집행을 확대하는 동시에 재산 추적을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난 7월 개정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전두환 추징법)과 유사한 내용이 모든 범죄에 확대 적용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소위 ‘김우중 법’이라고 칭하며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와 달리 ‘징벌적 차원’에서 선고된 것임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비판과 함께 일부 규정의 위헌성까지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반응은 개정안의 취지와 내용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정하고도 엄격한 법집행에 대한 사회의 요청을 외면하는 태도다.
먼저 명확하게 해둬야 할 점은 이번 개정안의 취지가 제3자의 사유재산을 대상으로 새로운 추징금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을 집행하는 절차 내지 방법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김우중 추징금과 전두환 추징금에 대해 그 법적 성격이 다름을 내세워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의 집행에 있어 그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은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고 어떤 것은 느슨하게 집행되거나 심지어 집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옹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불법재산 환수 절차·방법은 위헌 시비 대상 될 수 없어
우리 법에 규정된 추징의 성격을 ‘이익박탈적 추징’과 ‘징벌적 추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쪽 모두 범죄의 경제적 유인(誘因) 박탈을 통한 범죄 예방과 금압(禁壓)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추징의 법적 성격에 따라 추징 대상이 달라지지만 추징금 선고의 근거나 범위가 관련 법률에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므로 그 집행의 절차나 방법까지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개정안 중 제3자 명의의 재산에 대한 추징 집행 규정 또는 소급효 규정 등에 위헌 소지나 집행기관의 권한 남용 소지가 있다는 주장 역시 법안의 내용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개정안에서 추징 집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제3자의 전체 재산이 아니라 ‘제3자 명의로 은닉된 범죄수익 내지 불법재산’에 한정된다.
또 그러한 불법재산이라고 해도 해당 명의자가 불법재산이라는 사정을 알지 못하고 취득한 경우 추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입증책임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명의자가 집행 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의제기를 통해 법원의 재판을 받을 기회도 보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불법재산은 실질적으로 명의자가 아닌 범죄인 본인 소유의 재산이라고 할 것이며, 추징 판결 때 그런 사정이 이미 밝혀져 있었다면 당연히 몰수 또는 추징을 통해 국가에 귀속됐을 재산이다. 은닉된, 그리고 그 자체가 자금세탁 범죄의 대상이 되는 불법재산을 환수할 구체적 절차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위헌 시비의 대상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개정안이 제3자에 대한 재산 추적을 무차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정안은 추징 대상자의 차명재산 관리인 등 추징 대상 범죄수익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자로서 법원 영장을 발부받아야 가능토록 했다. 헌법의 영장주의에 부합하는 사법통제 장치를 마련해 둔 만큼 집행기관에 의한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정안에서 강화된 추징 집행방법에 관한 규정을 현재 집행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도 적용되도록 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정법의 내용을 사실 상태가 종료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적용되도록 하는 규정은 이른바 ‘부진정 소급효’에 관한 것으로, 이런 규정도 공익상 사유가 신뢰보호보다 우세한 경우는 허용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25조4000여억원에 이르는 추징금의 99.8%가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추징금은 내는 사람만 바보’이고 ‘버티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실정이다.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가족이나 측근 명의로 거액의 재산을 은닉해 놓고,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보통 국민보다 훨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도 종종 보도되고 있다. 제3자 재산 무차별 추적 불허…검사의 권한남용 주장은 억지
이런 상황에서 추징금 미납자들이 은닉한 재산을 철저하게 추적하고 엄정하게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 조치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런 요청을 대중영합적 발상으로 치부하거나 특정인만을 겨냥한 법률로 폄하하고, 불법수익에 대한 신뢰이익을 운운하는 것은 불의에 영합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의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성돈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반대 "재판없이 개인 재산 몰수…국가 형벌권 과도한 개입"
‘형사소송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 확보라는 일반적 정책목표에는 공감이 가지만 다수의 위헌적 요소와 한국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 열풍에 휩쓸려 아직까지 이 개정안의 위헌성이나 법체계상 모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논의가 나오지 않아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에 중요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첫째, 이 개정안은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현행법상 몰수는 형벌의 한 종류이고, 추징은 몰수가 불가능한 때 그 가액의 납부를 명하는 형벌적 성격의 사법 처분이다.
검사가 압수·수색 권한까지…다른나라에서는 전례 없어
그런데 이 개정안은 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몰수 대상 물건 및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에 대해 ‘그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검사가 범인이 제3자에게 재산을 숨겨 놓았다고 판단할 경우 그 제3자를 상대로 범인이 선고받은 형벌을 그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검사의 판단만으로 제3자의 재산을 강제 박탈하도록 하는 것과 다름없다.
둘째, 이 개정안은 별도의 재판 없이도 제3자의 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보장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원래 범인 외의 제3자가 소유한 재산에 대해 추징을 집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해당 물건이 몰수 대상 물건 또는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이라는 점과 범인 외의 제3자가 악의였다는 점을 검사가 재판 절차에서 입증하고 판사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의하면 범인과 무관한 제3자도 언제든지 자신의 재산을 ‘법원의 판결 절차 없이’ 추징당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셋째, 이 개정안은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과 이로 인한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에서는 다수의 특별법을 통해 몰수추징뿐 아니라 몰수추징을 피하려는 재산 도피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미 수사 단계에서 몰수추징 보전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사소송법’에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 집행의 근거를 신설해 모든 사건에 적용함으로써 제3자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범인 이외의 모든 사람의 재산을 손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두고 있다. 즉 이 개정안은 검사에게 법원의 영장 없이도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서류나 자료 제출 요구,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청 등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법원의 영장을 받으면 과세 정보 제공 요구와 압수수색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사에게 몰수추징의 집행을 위한 압수수색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이 개정안은 제3자 재산에 대한 추징의 집행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지나치게 희생시키는 과잉 입법이라 하겠다. 의견진술권·불복 절차 없어…제 3자 재산권 보호 외면
넷째, 이 개정안은 형 집행 절차에서 검사에게 사실인정의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반한다. 법치국가적 헌법질서 속에서 범죄 사실의 인정과 형벌의 선고 권한은 법원에 속한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형 집행 절차에서 검사에게 제3자에게 악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요컨대 이 개정안은 사실인정에 관한 권한을 법관에서 검사에게 이전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바, 이로써 자칫 한국의 사법질서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다섯째, 이 개정안은 부칙 제2조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에 재판이 확정된 사안에까지 소급해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을 허용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의 핵심 요소인 ‘형벌불소급원칙’에 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재판에서 법원의 제3자 재산에 대한 추징 판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법에 따라 제3자의 재산에 대해 추징을 집행한 경우에는 국민의 신뢰 보호를 크게 침해하는 것이 돼 형벌불소급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섯째, 이 개정안은 절차적 면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범죄인의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과는 달리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의 경우에는 제3자의 재산권 보호가 정면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제3자의 추징 집행 절차 참여권, 의견진술권, 불복 절차 등 권리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3자의 재산권 침해와 직결되는 제도를 마련하면서 추징금 집행의 효율성만 강조할 뿐 이런 세부적인 절차 마련에 소홀했다는 것은 졸속 입법의 전형이자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결과다.
범인이 몰수 대상 재산을 제3자 앞으로 숨겨놓은 경우에는 현행법에 따라 국가가 그 제3자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법 절차에 따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추징금 집행의 효율성만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재산권과 헌법질서를 경시하는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추징금 집행의 대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헌법질서를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보다 규범적인 관점에서 이 개정안에 대해 모두가 차분히 성찰했으면 한다.
백윤기 < 아주대 법대 학장·법학전문대학원장 >
읽을 만한 자료
- 독립제재로서의 범죄수익몰수제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3년
- 자금세탁범죄 해설과 판례, 법무부금융위원회, 2011년
-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해설, 법무부, 2002년
그러나 ‘김우중 추징법’을 둘러싼 논란은 적지 않다.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 우선 김 전 회장에게 부과된 17조9253억원의 천문학적인 추징금 성격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선 김 전 회장이 경영 실패로 국가를 부도 위기에 몰아넣은 만큼 추징금을 하루빨리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전 회장이 거액의 비자금을 숨겨뒀을 것이란 의혹이 있는 만큼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추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반대하는 쪽에선 김 전 회장이 비록 실패한 경영자지만 개인적으로 횡령하거나 착복한 재산은 없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정한 추징금이 실제로 환수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징벌’ 성격이 강한 만큼 추징법까지 만드는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
추징법을 두고 빚어지는 논란의 핵심은 위헌 여부다. 법원 판결 없이 환수하는 건 명백한 위법이라는 주장과 추징법에서 명시한 건 ‘제3자 명의로 은닉된 범죄수익이나 불법 재산’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김우중 추징법을 놓고 백윤기 아주대 법대 학장과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가 맞붙었다.
이태명/정소람 기자 chihiro@hankyung.com
찬성 "3者 명의 은닉 재산에 한정…추징금 집행기준 동일해야"
최근 정부는 추징금 미납자에 대한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대한 정책적 결정을 내렸다. 추징금 미납자가 제3자 명의로 은닉한 불법재산에 대해 추징 집행을 확대하는 동시에 재산 추적을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난 7월 개정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전두환 추징법)과 유사한 내용이 모든 범죄에 확대 적용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소위 ‘김우중 법’이라고 칭하며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와 달리 ‘징벌적 차원’에서 선고된 것임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비판과 함께 일부 규정의 위헌성까지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반응은 개정안의 취지와 내용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정하고도 엄격한 법집행에 대한 사회의 요청을 외면하는 태도다.
먼저 명확하게 해둬야 할 점은 이번 개정안의 취지가 제3자의 사유재산을 대상으로 새로운 추징금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을 집행하는 절차 내지 방법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김우중 추징금과 전두환 추징금에 대해 그 법적 성격이 다름을 내세워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의 집행에 있어 그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은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고 어떤 것은 느슨하게 집행되거나 심지어 집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옹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불법재산 환수 절차·방법은 위헌 시비 대상 될 수 없어
우리 법에 규정된 추징의 성격을 ‘이익박탈적 추징’과 ‘징벌적 추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쪽 모두 범죄의 경제적 유인(誘因) 박탈을 통한 범죄 예방과 금압(禁壓)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추징의 법적 성격에 따라 추징 대상이 달라지지만 추징금 선고의 근거나 범위가 관련 법률에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므로 그 집행의 절차나 방법까지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개정안 중 제3자 명의의 재산에 대한 추징 집행 규정 또는 소급효 규정 등에 위헌 소지나 집행기관의 권한 남용 소지가 있다는 주장 역시 법안의 내용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개정안에서 추징 집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제3자의 전체 재산이 아니라 ‘제3자 명의로 은닉된 범죄수익 내지 불법재산’에 한정된다.
또 그러한 불법재산이라고 해도 해당 명의자가 불법재산이라는 사정을 알지 못하고 취득한 경우 추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입증책임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명의자가 집행 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이의제기를 통해 법원의 재판을 받을 기회도 보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불법재산은 실질적으로 명의자가 아닌 범죄인 본인 소유의 재산이라고 할 것이며, 추징 판결 때 그런 사정이 이미 밝혀져 있었다면 당연히 몰수 또는 추징을 통해 국가에 귀속됐을 재산이다. 은닉된, 그리고 그 자체가 자금세탁 범죄의 대상이 되는 불법재산을 환수할 구체적 절차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위헌 시비의 대상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개정안이 제3자에 대한 재산 추적을 무차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정안은 추징 대상자의 차명재산 관리인 등 추징 대상 범죄수익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자로서 법원 영장을 발부받아야 가능토록 했다. 헌법의 영장주의에 부합하는 사법통제 장치를 마련해 둔 만큼 집행기관에 의한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정안에서 강화된 추징 집행방법에 관한 규정을 현재 집행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도 적용되도록 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정법의 내용을 사실 상태가 종료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적용되도록 하는 규정은 이른바 ‘부진정 소급효’에 관한 것으로, 이런 규정도 공익상 사유가 신뢰보호보다 우세한 경우는 허용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25조4000여억원에 이르는 추징금의 99.8%가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추징금은 내는 사람만 바보’이고 ‘버티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실정이다.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가족이나 측근 명의로 거액의 재산을 은닉해 놓고,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보통 국민보다 훨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도 종종 보도되고 있다. 제3자 재산 무차별 추적 불허…검사의 권한남용 주장은 억지
이런 상황에서 추징금 미납자들이 은닉한 재산을 철저하게 추적하고 엄정하게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 조치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런 요청을 대중영합적 발상으로 치부하거나 특정인만을 겨냥한 법률로 폄하하고, 불법수익에 대한 신뢰이익을 운운하는 것은 불의에 영합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의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성돈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반대 "재판없이 개인 재산 몰수…국가 형벌권 과도한 개입"
‘형사소송법’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추징금 집행의 실효성 확보라는 일반적 정책목표에는 공감이 가지만 다수의 위헌적 요소와 한국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 열풍에 휩쓸려 아직까지 이 개정안의 위헌성이나 법체계상 모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논의가 나오지 않아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에 중요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본다.
첫째, 이 개정안은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현행법상 몰수는 형벌의 한 종류이고, 추징은 몰수가 불가능한 때 그 가액의 납부를 명하는 형벌적 성격의 사법 처분이다.
검사가 압수·수색 권한까지…다른나라에서는 전례 없어
그런데 이 개정안은 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몰수 대상 물건 및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에 대해 ‘그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검사가 범인이 제3자에게 재산을 숨겨 놓았다고 판단할 경우 그 제3자를 상대로 범인이 선고받은 형벌을 그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검사의 판단만으로 제3자의 재산을 강제 박탈하도록 하는 것과 다름없다.
둘째, 이 개정안은 별도의 재판 없이도 제3자의 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보장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원래 범인 외의 제3자가 소유한 재산에 대해 추징을 집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해당 물건이 몰수 대상 물건 또는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이라는 점과 범인 외의 제3자가 악의였다는 점을 검사가 재판 절차에서 입증하고 판사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의하면 범인과 무관한 제3자도 언제든지 자신의 재산을 ‘법원의 판결 절차 없이’ 추징당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셋째, 이 개정안은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과 이로 인한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에서는 다수의 특별법을 통해 몰수추징뿐 아니라 몰수추징을 피하려는 재산 도피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미 수사 단계에서 몰수추징 보전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사소송법’에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 집행의 근거를 신설해 모든 사건에 적용함으로써 제3자의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범인 이외의 모든 사람의 재산을 손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두고 있다. 즉 이 개정안은 검사에게 법원의 영장 없이도 관계인의 출석 요구 및 진술 청취, 서류나 자료 제출 요구, 금융거래 정보 제공 요청 등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법원의 영장을 받으면 과세 정보 제공 요구와 압수수색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사에게 몰수추징의 집행을 위한 압수수색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이 개정안은 제3자 재산에 대한 추징의 집행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지나치게 희생시키는 과잉 입법이라 하겠다. 의견진술권·불복 절차 없어…제 3자 재산권 보호 외면
넷째, 이 개정안은 형 집행 절차에서 검사에게 사실인정의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반한다. 법치국가적 헌법질서 속에서 범죄 사실의 인정과 형벌의 선고 권한은 법원에 속한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형 집행 절차에서 검사에게 제3자에게 악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요컨대 이 개정안은 사실인정에 관한 권한을 법관에서 검사에게 이전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바, 이로써 자칫 한국의 사법질서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다섯째, 이 개정안은 부칙 제2조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에 재판이 확정된 사안에까지 소급해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을 허용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의 핵심 요소인 ‘형벌불소급원칙’에 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재판에서 법원의 제3자 재산에 대한 추징 판결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법에 따라 제3자의 재산에 대해 추징을 집행한 경우에는 국민의 신뢰 보호를 크게 침해하는 것이 돼 형벌불소급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섯째, 이 개정안은 절차적 면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범죄인의 재산에 대한 몰수추징과는 달리 제3자의 재산에 대한 추징의 경우에는 제3자의 재산권 보호가 정면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제3자의 추징 집행 절차 참여권, 의견진술권, 불복 절차 등 권리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3자의 재산권 침해와 직결되는 제도를 마련하면서 추징금 집행의 효율성만 강조할 뿐 이런 세부적인 절차 마련에 소홀했다는 것은 졸속 입법의 전형이자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결과다.
범인이 몰수 대상 재산을 제3자 앞으로 숨겨놓은 경우에는 현행법에 따라 국가가 그 제3자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법 절차에 따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추징금 집행의 효율성만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재산권과 헌법질서를 경시하는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추징금 집행의 대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헌법질서를 훼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보다 규범적인 관점에서 이 개정안에 대해 모두가 차분히 성찰했으면 한다.
백윤기 < 아주대 법대 학장·법학전문대학원장 >
읽을 만한 자료
- 독립제재로서의 범죄수익몰수제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3년
- 자금세탁범죄 해설과 판례, 법무부금융위원회, 2011년
-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해설, 법무부,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