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특단 자구책] 동부"위기론 불식시킬 것"…'애지중지'하이텍·'알짜'메탈도 판다
“유동성 위기론을 불식시키겠다.”

동부 고위 관계자가 17일 고강도 자구계획을 발표한 후 한 말이다. 10년간 2조원 넘게 쏟아부으며 키운 동부하이텍까지 매각하기로 한 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유동성 위기설을 확실하게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STX 동양그룹 사태 이후 채권단이 선제 자구 노력을 강력하게 주문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자산을 시한을 명시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채권단도 동부의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동부의 승부수, 하이텍을 매물로

동부는 이날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자구계획안을 내놨다. 현재 총 차입금이 6조원인데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을 팔아 3조원을 조달, 2015년까지 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김준기 회장도 1000억원을 출연한다. 동부화재 지분 7.9% 중 5%를 매각하고 동부건설 지분 20%도 팔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계획이 성공하면 270%인 그룹의 부채비율이 2015년 170%로 개선돼 재무구조 개선약정도 졸업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동부하이텍 매각이다. 시스템반도체를 만드는 동부하이텍은 김 회장의 꿈이 어려 있는 회사다. 1997년 세운 동부전자의 사명을 바꿔 만든 이 회사는 계속 적자를 내 동부 유동성 위기의 장본인으로 몰렸지만 김 회장은 “삼성도 반도체에서 수익을 내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며 강한 애정을 보였다. 이런 회사가 올 상반기 5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팔기로 한 것이다.

시스템반도체 생산라인(팹) 두 개와 반도체 설계 능력을 가진 이 회사가 매물로 나오면 SK하이닉스와 LG전자, 자동차용 반도체 자체 설계를 꿈꾸는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인수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동부메탈도 판다. 2011년 466억원, 2012년 298억원 등 계속 영업이익을 낸 우량 회사다. 동부하이텍이 가진 지분(31.28%)과 동부인베스트먼트 보유 지분(31%), 동부스탁인베스트먼트 보유 지분(8.5%) 등 70.78% 전량을 매각할 계획이다.

동부제철은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매각 외에 동부특수강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보유 계열사 지분 처분 등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2조3500억원인 차입금(부채비율 269%)을 2015년 9000억원 이하(140%)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동부건설은 기존 동부익스프레스 매각 외에 동부발전당진 지분도 팔기로 했다. 이 밖에 동부팜한농 등 다른 계열사들도 유휴부지, 유형자산 등을 처분키로 했다.

◆유동성 위기설 씻어낼까


동양 사태 이후 시장에선 동부 한진 현대 등도 위험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부에 대한 우려의 핵심은 이익에 비해 차입금이 많지 않으냐는 것이다. 제철과 건설, 하이텍 등 동부 계열사들의 작년 말 기준 총 차입금은 6조2517억원으로 작년에도 1357억원 늘었다. 2009년 이후 계속된 증가세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자구계획을 압박했지만 동부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약 1조원 규모를 마련하는 자구안을 고집했다. 채권단은 지난 11일 김 회장을 찾아가 “동부제철 회사채 금리가 연 10.8%에 이르는데, 이대로는 유동성 위기설을 진화할 수 없다”며 고강도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요구에 선뜻 답하지 않았다. “최대한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그리고 장고가 이어졌다. 16일 밤, 동부는 산업은행에 “동부하이텍을 팔겠다”고 마침내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선택과 집중’을 본격화한다. 계열사를 늘리기보다 △금융 △철강 △전자 △농업·바이오 등 4개 주력 분야를 중점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동부 관계자는 “대규모 자산 매각에도 불구하고 제조분야 연매출 규모가 10조원을 웃돌 전망”이라며 “위기를 딛고 재도약할 수 있는 저력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이상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