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성수동 신도리코 본사에서 마틴 다비셔 탠저린 대표가 자신의 산업디자인 철학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도리코 제공
19일 서울 성수동 신도리코 본사에서 마틴 다비셔 탠저린 대표가 자신의 산업디자인 철학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도리코 제공
세계 각국 기업들이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은 영국 디자인그룹 탠저린의 마틴 다비셔 대표일 것이다. 1989년 설립된 탠저린은 다비셔 대표와 애플 아이폰 디자이너로 유명한 조너선 아이브가 함께 창업한 디자인 회사다. 산업디자인 분야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넘버원’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90년부터 한국 기업들과 일하기 시작해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중공업 SK텔레콤 등이 탠저린의 주요 고객이다. 복합기 제조업체 신도리코의 새로운 기업이미지(CI)를 공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다비셔 대표를 19일 서울 성수동 신도리코 본사에서 만났다.

◆“멋만 강조한 디자인은 안돼”

CI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비셔 대표는 “기업의 얼굴인 CI에서는 그 기업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트렌드나 유행을 따라 CI를 디자인하면 실패”라며 “20년이 지나도 해당 기업을 아는 사람, 해당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 해당 기업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그 기업의 정체성과 문화, 시장에서의 위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비셔 대표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물어봤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디자인으로 기업에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아름다움 혹은 재미만을 강조한 디자인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제품 디자인을 할 땐 제품 자체가 가진 본질을 살리는 동시에 사람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항상 신경 쓴다”고 덧붙였다.

다비셔 대표는 탠저린이 디자인한 영국항공의 비즈니스 좌석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았다. 비즈니스석의 플랫베드가 일자로 반듯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S자로 디자인된 이 좌석 덕분에 영국항공은 경쟁사보다 기내 공간을 15~20%나 넓힐 수 있었다.

영국항공은 플랫베드를 설치한 지 16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을 30% 가까이 올렸고, 적자에서도 벗어났다. 그는 “디자인의 혁신성과 산업적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은 공격적”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과 일할 기회가 유난히 많았던 다비셔 대표는 “한국 기업들은 다른 회사보다 훨씬 공격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들은 대부분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찾아오고,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다시 해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의사 결정권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단점으로 꼽았다.

제품이나 기업 CI 디자인이 잘된 기업으로는 유니클로와 소니, 애플을 꼽았다. 다비셔 대표는 “상자 안에 로고가 새겨진 유니클로의 CI는 언어만 바꿔 세계에서 사용하기 유용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매장에 로고를 노출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랜 세월 수정 없이 기업의 정체성을 반영해온 소니의 로고도 강력하고, 애플의 디자인 혁신은 소비자의 마음을 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디자인 창조경제 국가’로 불리는 비결을 묻자 다비셔 대표는 “영국 정부는 비즈니스 당사자와 디자이너를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잘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