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630명, 관동대지진 290명…정부, 일제강점기 희생자 명단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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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자 22만9781명
피해보상 근거로 활용될듯
외교부 "배상청구 검토 필요"
피해보상 근거로 활용될듯
외교부 "배상청구 검토 필요"
한국 정부가 1953년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 대지진 희생자 명부가 처음 공개됐다.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단도 최초 공개돼 향후 일본과의 피해보상에서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19일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지진 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781명)’ 등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세 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 타살 당했다고 기록돼 있는 등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다.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 일시, 순국 장소, 순국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희생자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관련 독립유공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지진 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290명이 기록돼 있다.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최대 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 일시, 피살 장소, 피살 상황이 기록돼 있다.
‘일정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추정되며, 22만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5771명의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에 비해 5만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최초 공개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일 배상 청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관동 대지진 피살자 문제에 대해 “공권력에 의한 피해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일본 민간 조직에 의해 피해를 많이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민/조수영 기자 kkm1026@hankyung.com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19일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지진 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781명)’ 등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세 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 타살 당했다고 기록돼 있는 등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다.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 일시, 순국 장소, 순국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희생자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관련 독립유공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지진 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290명이 기록돼 있다.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최대 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 일시, 피살 장소, 피살 상황이 기록돼 있다.
‘일정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추정되며, 22만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5771명의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에 비해 5만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는 최초 공개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일 배상 청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관동 대지진 피살자 문제에 대해 “공권력에 의한 피해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일본 민간 조직에 의해 피해를 많이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민/조수영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