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이어지자 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엊그제 해명자료를 내고 이 법안이 과잉 규제라는 일각의 주장은 기업 측의 침소봉대라고 밝혔다. 왜곡된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시장이 예외적으로 교란된 상황에서만 정부가 제조사를 조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인데 제조업체 측이 이를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앞두고 관련 업체를 직접 겨냥해 비난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제조업체들의 반발에 재갈을 물리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법은 누가 보더라도 계약자유의 원칙이나 기업의 마케팅 활동 등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간섭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방통위가 제조사 사무실까지 진입해 조사하는 권력을 갖겠다는 나라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 법안이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된 것이어서 입법예고를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여론 수렴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불만이 나온다며 관련 업계를 겁주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국정감사를 비판한 이희범 경총 회장을 ‘괘씸죄’로 몰아 국감 증인채택을 요구했던 김동철 의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창조경제가 가능하겠는가. 미래부와 방통위가 하는 일이 겨우 이런 건가.

물론 국내 휴대폰 단말기 유통시장과 통신 요금체계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통신요금인가제를 포함, 정부의 온갖 규제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통령은 요즘 입만 열면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를 강조한다. 이런 와중에 제조사, 통신사는 물론 소비자에게조차 이득이 될지 불투명한 규제법을 또다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