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여자 DNA
박인비(25) 이상화(24) 김연아(23) 김자인(25) 심석희(16)…. 연일 이어지는 한국 여자들의 낭보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모두가 선진국 스포츠라고 치부되던 분야에서 얻어낸 승리의 주인공들이어서 더욱 감동적이다. 박인비, 이상화, 김연아를 후원한 KB금융그룹은 “세계 1위 여제를 셋이나 키웠다”는 찬사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골프 선수 박인비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LPGA ‘올해의 선수’에 오른 것은 25년 전 구옥희의 우승으로 시작한 미국 투어 도전사에 박세리를 완성하며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쾌거다. 박인비는 이번 주말엔 시즌 상금왕과 최저타수상 등 3관왕에 도전한다. 그동안에도 한국 여자들은 LPGA 상금왕(신지애 최나연 박인비)과 최저타수상(박세리 박지은 최나연 박인비), 신인상(박세리 김미현 한희원 안시현 이선화 신지애 서희경 유소연)을 휩쓸어왔다.

‘빙속여제’ 이상화는 올해에만 4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세계 빙상계는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가리지 않는 이상화의 괴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앳된 여고생 심석희도 월드컵 시리즈 10개 대회 연속 금메달로 ‘차세대 여왕’ 자리를 굳혔다. 올초 세계선수권 정상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피겨 퀸’ 김연아는 밴쿠버의 영광을 소치에서 재확인할 계획이다. ‘스포츠클라이밍 스타’ 김자인은 월드컵에서 4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1위와 월드컵 1위를 석권했다.

한국 선수들이 유독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AP 등 외국 언론들은 한국인 특유의 ‘올인(all in) 문화’와 강한 정신력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어려서부터 한 종목에 매진하고, 성공에 대한 강렬한 목표의식을 가진 데다 훈련장에도 가장 일찍 나오고 늦게 나가는 ‘악바리’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성공해서 부모형제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성취욕구 또한 어느 나라 선수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인의 숨은 에너지다.

이들의 강인한 멘탈은 전통적인 헝그리 정신과도 다르다. 국민소득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취가 확인되던 시점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다. 멘탈은 선진국형이요 발랄하기는 따라올 나라가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 여자들의 강인함이 스포츠 분야에서만 빛나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교육열에다 부지런하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주체로서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그대로 쓰는 여성은 한국인과 유대인밖에 없다고 한다. 유달리 강한 한국 여성들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남자들이여 분발하시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