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기술(IT) 업체로 이직한 박종열 차장(39)은 ‘옷 잘 입는 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정장을 입었던 이전 회사와 달리 새 직장에선 비즈니스 캐주얼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서다. 박 차장은 “정장을 입을 땐 넥타이만 신경쓰면 됐는데 위아래는 물론 안에 입는 셔츠까지 맞춰 입으려니 쉽지가 않다”면서도 “패션 잡지 등에 눈동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파괴’로 패션지도 바뀌어

비즈니스 캐주얼이 남성 패션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패션시장 지도를 바꿔 놓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가 지난달 16일 서울 도심에서 출근하는 40대 이상 남성 옷차림을 조사한 결과 캐주얼이 48.3%, 정장이 51.7%로 반반이었다. 특히 10명 중 1명(11.8%)은 백팩(등에 메는 가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3년 전(3.2%)의 네 배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패션업체들은 바빠지고 있다. 중견업체인 FGF의 ‘인터메조’는 올 들어 주력 생산 품목에서 남성정장을 제외시켰다. 입학, 졸업, 취업 시즌에만 한정 판매하기로 했다. 제일모직의 대표 신사복 브랜드인 ‘로가디스’는 지난 9월 몸에 딱 맞는 비즈니스 캐주얼 스타일의 슬림 피트(slim fit)를 내놓았다. ‘스마트 슈트’로 불리는 이 옷은 전체 매출의 30%에 달할 정도로 좋은 성과를 올렸다. 코오롱FnC는 정통 신사복 ‘캠브리지 멤버스’ 대신 비즈니스 캐주얼인 ‘커스텀멜로우’가 간판으로 부상했다. 2009년 내놓은 커스텀멜로우는 매출이 첫해 30억원에서 지난해 4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LG패션 정장 ‘타운젠트’는 이번 가을 시즌 세트 제품을 정장, 비즈니스 캐주얼, 캐주얼 스타일로 각각 나눠 선보였다. 롯데백화점은 국내 남성복 시장에서 비즈니스 캐주얼 비중이 지난해 57%에서 2018년 75%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비즈니스 캐주얼 ‘스트레스’도

옷을 맞춰 입는 데 익숙하지 않은 중년 남성 중에는 비즈니스 캐주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따라 패션업체의 마케팅 전략 또한 ‘정보 제공형’으로 바뀌고 있다. 옷을 잘 입는 법을 알려주고, 전문가들이 엄선한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는 것이다.

로가디스는 재킷부터 신발, 가방까지 모든 상품을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슈어 베트(sure bet)’ 행사를 올해 말까지 벌인다. 롯데백화점은 올 8월 패션을 잘 아는 직원이 고객과 상담해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는 ‘쇼핑 가이드’ 제도를 도입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의 기본 지식을 잡지 식으로 소개하는 ‘로엘 스타일’이라는 책도 펴냈다. 옥션은 패션 전문가의 칼럼과 함께 이들이 엄선한 상품을 판매하는 큐레이션 방식의 남성 패션 전문관 ‘맨 인 스타일’을 열었다.

일부 전문가는 “남성복 시장이 다시 정통 비즈니스 슈트 중심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금요일에 정장을 입는 포멀 프라이데이(formal friday)라는 새 풍속도가 등장했다. 자유 복장으로 출근하는 캐주얼 프라이데이(casual friday)의 반대다. 유행을 따라가느라 의류비 지출이 과도해진 남성들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일종의 ‘반작용’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