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회의 언제 열리나…난감한 총리 > 정홍원 국무총리(오른쪽)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이 속개되길 기다리며 눈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 본회의 언제 열리나…난감한 총리 > 정홍원 국무총리(오른쪽)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이 속개되길 기다리며 눈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 국회가 개회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지만 상임위원회마다 입법의 첫 단계인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정기 국회 개회일인 지난 9월1일부터 현재까지 3개월 가까이 법안심사소위는 5개 상임위에서 10차례 열린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16개 상임위 중 단 한 번도 법안심사소위를 열지 못한 곳이 11군데나 됐다.

○여야 극한 대치로 허송세월

국토교통위가 교통법안심사소위를 세 차례, 국토법안심사소위를 한 차례 열었으며 안전행정위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두 차례씩 법안심사소위를 열었다. 이 밖에 정보위와 여성가족위가 한 차례씩 법안심사소위를 진행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부수 법안인 세제개편안을 심사할 기획재정위(조세소위)나 각종 경제 활성화 법안이 집중돼 있는 산업통상자원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등 11개 상임위는 이번 정기 국회 들어 법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여야가 강 대 강 대치 정국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 국회가 9월1일 개회했지만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못해 거의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및 기초연금 공약 후퇴 등에 대한 대정부 현안 질의와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야당과 이를 거부하는 여당이 첨예하게 맞섰다. 여야가 한 발짝씩 양보해 정기 국회가 정상화됐지만 이미 27일을 흘려보낸 뒤였다.

이후에는 국정감사를 하느라 또다시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 2일 국정감사가 끝난 뒤에도 경색된 정국은 풀리지 않았다. 민주당은 8일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의사 일정을 하루 중단했다. 이어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 특검을 촉구하기 위해 11~13일에도 감사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모든 일정을 보이콧했다.

18일부터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과 함께 분야별 대정부 질문이 시작됐다. 대정부 질문 기간에는 상임위를 열지 않는다는 관례 때문에 법안 심의는 진도를 내지 못했다.

○상임위 계류 법안만 6000여개

정기국회 석달…16개 상임위 중 11곳 법안심사 한번도 안해
이런 가운데 각종 민생 법안은 상임위에 그대로 묶여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현재 각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법안만 6091개에 달한다. 안전행정위가 868개로 가장 많고 △보건복지위 710개 △교육문화체육관광위 646개 △기획재정위 599개 △법제사법위 497개 △국토교통위 486개 △환경노동위 441개 △정무위 432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320개 △산업통상자원위 300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288개 △국회운영위 162개 △국방위 131개 △여성가족위 105개 △외교통일위 89개 △정보위 17개 등의 순이다.

여야가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중점 추진 법안들도 상임위에서 그대로 잠자고 있다. 새누리당이 5일 발표한 15개 최우선 처리 법안은 △기업 투자 활성화 7개 △주택시장 활성화 5개 △벤처·창업 대책 3개 등이다. 외국인 합작회사에 한해 지주사 규제를 풀겠다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중소기업 전용 증시인 ‘코넥스’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도 7일 의원총회에서 민주주의(14개) 및 민생(41개) 살리기 법안 55개를 선정한 바 있다. 전·월세 가격 인상폭을 매년 5% 이하로 제한하고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계약갱신권을 주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전·월세 상한제), 소득세 최고 구간 신설과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을 담은 소득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부자감세 철회’법),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중소기업을 제외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등이 담겨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의 중점 추진 법안 가운데 공통분모가 거의 없을 만큼 의견 차가 작지 않은데도 이를 논의할 장마저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며 “여야가 한 발씩 양보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아쉽다”고 했다.

이호기/추가영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