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율곡·퇴계…서울에 '엉터리 집터' 수두룩
서울 초동 명보아트홀(옛 명보극장) 앞에는 가로세로 각 1m짜리 표석이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임을 알리기 위해 1985년 설치했다. 그러나 충무공의 실제 생가터는 이곳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헌에 따르면 충무공 출생지는 서울 건천동이다. 건천동은 인현동 1가로, 표석이 있는 곳에서 수백m 떨어져 있다.

서울 도심에 설치된 문화재 표석 중 절반 이상이 엉뚱한 곳에 설치되거나 표석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 문화재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서울에 있는 335개 문화재 표석을 전수 조사한 결과 57.6%인 193개가 정비 대상으로 나타났다. 전체 표석 중 20%인 67개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거나 표석 내용에 심각한 오류가 있어 철거가 시급한 A등급 정비 대상으로 분류됐다.

A등급에는 충무공 생가 터를 비롯해 추사 김정희,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집터 등이 포함돼 있다. 율곡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석은 인사동 골목 안쪽에 설치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율곡이 별세한 곳이 인사동이라는 기록만 있을 뿐 표석이 설치된 장소가 율곡의 거주지인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표석은 대부분 1980~1990년대 설치됐다.

최근 열린 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은 “집터를 정확하게 고증할 수 없는 엉터리 장소에 표석을 설치한 사례도 많다”며 “잘못된 곳을 실제 장소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어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표석을 철거할 경우 해당 위인이 속한 문중의 거센 반발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충무공을 지역 내 대표 역사인물로 꼽고 있는 중구청도 “표석 철거는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달 말께 표석이 엉뚱한 곳에 설치됐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정비 필요성도 함께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김수정 서울시 문화재연구팀장은 “A등급 정비 대상인 67개는 단계적으로 내년까지 철거하거나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