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女成시대] '망분리 PC' 컴트리 이숙영 사장, PC사장된 컴맹주부…"2~3시간 쪽잠 열공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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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분리 PC' 컴트리 이숙영 사장
실직한 남편…어린 두 딸…200만원으로 PC유통업
회사 키운 뒤 컴퓨터 제조…'오너 아닌 여자' 시선 힘들어
실직한 남편…어린 두 딸…200만원으로 PC유통업
회사 키운 뒤 컴퓨터 제조…'오너 아닌 여자' 시선 힘들어
“최근 내놓은 ‘망분리 PC’가 공공기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개발에만 1년 이상 매달렸습니다. 이 같은 자체 제품들을 통해 탄탄한 정보기술(IT) 중견기업으로 크고 싶습니다.”
이숙영 컴트리 사장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망분리 PC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사내 제조시스템을 재정비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컴트리는 ‘컴퓨터 나무’라는 뜻의 PC업체다. 망분리 PC는 컴퓨터 한 대로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분리, 해킹 및 내부정보 유출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PC로 보안을 중시하는 관공서 군부대 등을 겨냥해 만들었다.
◆컴퓨터 유통업으로 출발
‘컴맹’ 주부였던 이 사장이 PC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무렵이었다. 당시 한보그룹의 전산총괄 이사였던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 다급해진 부부는 두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수중에 있던 200만원으로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 사무실을 차렸다. 집기를 살 돈조차 없어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책상과 의자를 주워왔다.
시작은 컴퓨터 유통업이었다. 운 좋게 당시 정보통신부의 PC 보급사업 총판에 참여했던 업체의 하청을 받아 가정에 컴퓨터를 설치해주는 일을 맡았다. 남편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며 PC를 달아줬고, 이 과정에서 컴퓨터에 대해 배워갔다.
이 사장은 “고객 응대를 하려면 내가 제대로 알아야 했고 공부를 하다 보니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며 “‘웬 아줌마가 컴퓨터를 설치하러 왔느냐’는 반응에 ‘무늬만 여자입니다’라고 대꾸했다”고 회상했다. AS 요청 전화가 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달려갔다.
◆여성으로 보는 시선 여전
이렇게 매달린 덕분에 사업은 숨통이 트였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남편이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남편이 학교로 떠나자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이 사장은 대형 서버시스템 구축사업 수주 등으로 사업을 키웠다.
이 사장은 2010년 업종을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바꿨다. 법원 교육청 안전행정부 등 주요 정부기관에 PC를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망분리 PC를 만드느라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직원 15명이 매출 150억원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이 사장은 내다봤다.
회사가 어느 정도 컸는데도 힘든 점은 여전히 많다. 영업을 뛰다 보면 술자리에서 자신을 ‘사장’이 아닌 ‘여성’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나를 기업인으로 보는 거래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며 “주문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나 자신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사장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구매제 제대로 시행해야”
‘공공기관이 물품 및 용역을 구매할 때 5% 이상 여성기업에 할당’해야 하는 여성기업 공공구매제에 대해서도 이 사장은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신제품 홍보물을 들고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며 영업하는데, ‘여성기업에서 이미 구매했다’고 말하는 곳이 많더라”며 “하지만 알고 보니 여성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비품을 사놓고 할당 비율을 때운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여성기업 공공구매제는 올해 공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의무화된다.
이 사장은 요즘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활동에도 열심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자매애’를 나눈다고 말했다. 그는 “연말에 여경협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몇몇 사장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제목은 ‘여성 CEO의 하루’”라고 알려줬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이숙영 컴트리 사장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망분리 PC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사내 제조시스템을 재정비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컴트리는 ‘컴퓨터 나무’라는 뜻의 PC업체다. 망분리 PC는 컴퓨터 한 대로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분리, 해킹 및 내부정보 유출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PC로 보안을 중시하는 관공서 군부대 등을 겨냥해 만들었다.
◆컴퓨터 유통업으로 출발
‘컴맹’ 주부였던 이 사장이 PC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무렵이었다. 당시 한보그룹의 전산총괄 이사였던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 다급해진 부부는 두 딸의 학비를 벌기 위해 수중에 있던 200만원으로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 사무실을 차렸다. 집기를 살 돈조차 없어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책상과 의자를 주워왔다.
시작은 컴퓨터 유통업이었다. 운 좋게 당시 정보통신부의 PC 보급사업 총판에 참여했던 업체의 하청을 받아 가정에 컴퓨터를 설치해주는 일을 맡았다. 남편과 함께 집집마다 방문하며 PC를 달아줬고, 이 과정에서 컴퓨터에 대해 배워갔다.
이 사장은 “고객 응대를 하려면 내가 제대로 알아야 했고 공부를 하다 보니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며 “‘웬 아줌마가 컴퓨터를 설치하러 왔느냐’는 반응에 ‘무늬만 여자입니다’라고 대꾸했다”고 회상했다. AS 요청 전화가 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달려갔다.
◆여성으로 보는 시선 여전
이렇게 매달린 덕분에 사업은 숨통이 트였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남편이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남편이 학교로 떠나자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이 사장은 대형 서버시스템 구축사업 수주 등으로 사업을 키웠다.
이 사장은 2010년 업종을 유통업에서 제조업으로 바꿨다. 법원 교육청 안전행정부 등 주요 정부기관에 PC를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망분리 PC를 만드느라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직원 15명이 매출 150억원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이 사장은 내다봤다.
회사가 어느 정도 컸는데도 힘든 점은 여전히 많다. 영업을 뛰다 보면 술자리에서 자신을 ‘사장’이 아닌 ‘여성’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나를 기업인으로 보는 거래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며 “주문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나 자신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사장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구매제 제대로 시행해야”
‘공공기관이 물품 및 용역을 구매할 때 5% 이상 여성기업에 할당’해야 하는 여성기업 공공구매제에 대해서도 이 사장은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신제품 홍보물을 들고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며 영업하는데, ‘여성기업에서 이미 구매했다’고 말하는 곳이 많더라”며 “하지만 알고 보니 여성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비품을 사놓고 할당 비율을 때운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여성기업 공공구매제는 올해 공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의무화된다.
이 사장은 요즘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활동에도 열심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자매애’를 나눈다고 말했다. 그는 “연말에 여경협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몇몇 사장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제목은 ‘여성 CEO의 하루’”라고 알려줬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