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폭로…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기여
문규현 신부 방북 이후 친북성향 논란 끊이지 않아
민주화와 인권 회복, 사회정의 실천 등에 기여해 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이런 비판에 직면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인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것과 달리 2000년대 들어서는 정치적 편향성이 자주 거론되면서 사제단에 대한 보수·진보 진영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앞장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된 것은 1974년 7월23일. 당시 원주교구장이던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며 양심선언을 발표한 뒤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자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원주에서 사제단을 결성했다. 사제단은 일정한 조직의 틀을 갖추고 있지는 않으며, 회원 수도 일정하지 않다. 다만 전국의 사제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천주교 주교회의가 인준한 단체는 아니어서 사제단의 활동이 천주교의 공식 의견과 엇박자를 내는 경우도 많다.
사제단은 1970~1980년대 양심수 석방 및 유신헌법 반대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 민주헌정 회복요구, 5·18민주화운동, 1964년에 일어난 인민혁명당사건의 진상규명운동, 자유언론실천운동 등의 민주화운동과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확보 운동에 앞장섰다.
1987년에는 서울대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해 6월항쟁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에도 민족의 평화통일, 국가보안법 폐지, 생명평화, 북한주민 돕기, 반전평화 등의 운동을 벌이며 천주교의 진보 진영으로 자리잡았다. 1999년 10월에는 사제의 사회정의활동에 대한 신학적 근거와 당위성을 밝힌 사제헌장도 제정했다.
◆정치적 편향성 시비 잦아
하지만 사제단은 정의와 양심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면서 편향성 시비를 불러왔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난 1987년 대통령선거 개표의 컴퓨터 조작설, 2001년 말 제기한 KAL858기 폭파사건 조작 의혹이 그런 사례다. 국가보안법 폐지, 새만금 개발사업 반대,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이라크 파병 철회,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도 편향성 시비를 야기했다.
정부 정책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을 사제단의 이름으로 재단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4대강 사업 반대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보수성향의 언론 및 시민단체들과 마찰을 빚었다. 2010년 12월 4대강 사업에 대해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개발은 토목공사자들이 다룰 분야며 과학의 문제”라고 말한 데 대해 ‘궤변’ ‘골수 반공주의자’ 등의 극렬한 표현을 동원하며 퇴진을 촉구해 파문을 일으켰다.
친북 성향도 논란거리다. 1989년 사제단 소속 문규현 신부의 방북, 1998년 8월 사제단 대표단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및 김일성 주석 영생 기원 방명록 작성 논란, 국가보안법 철폐 및 주한미군 철수 주장,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 등 사제단은 늘 북한과 가깝거나 관대하다는 보수 진영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사제단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