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량 회사채 '자체 소화' 비중 전체 40% 육박
회사채시장에 가격형성 기능 왜곡 현상도 초래

올해 산업은행이 발행에 참여했다가 미매각이 발생해 떠안은 비우량 등급 회사채 물량이 1조2천400억원으로 비중이 4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의 '물량 떠안기'가 비우량 등급의 기업에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회사채 가격 왜곡, 산업은행 재정 부실화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와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산업은행이 대표주관사 또는 공동 인수사로 참여한 가운데 공모 발행된 A+등급 이하 회사채의 전체 발행량은 총 3조1천9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미매각이 발생해 산업은행이 떠안은 물량의 규모는 1조2천400억원으로 전체 발행량의 38.8%를 차지했다.

지난 8월 코오롱글로벌(BBB·500억원), 7월 SK해운(A·500억원), 5월 한양(BBB+·200억원), 4월 한진해운 외화표시 회사채(A-·한화 약 1천680억원) 등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이 아예 발행된 전량을 인수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비우량 등급 회사채를 떠안아 주는 것에 대한 업계의 의견은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과 회사채 발행에 참여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비우량 등급 회사는 산업은행의 지원이 없다면 시장에서 제대로 발행·유통되지 못했을 회사채를 발행함으로써 재무적으로 개선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증권사도 산업은행 덕분에 직접 미매각 물량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어 좋다.

그러나 회사채 업계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일단 회사채 시장의 가격 형성 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대표 주관사 또는 공동 인수자로 참여한 증권사들은 미매각 물량을 떠안은 뒤에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자 자신들이 발행사로부터 받은 인수 수수료를 녹이는 방식으로 회사채의 금리를 높여서 판매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비우량 등급 회사채의 리스크가 회사채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6월 기준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6%로 작년 같은 기간(14.6%)보다 약 1%포인트 하락한 상태다.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기자본을 보충했지만 신용도가 낮은 기업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위험가중자산이 더 가파르게 불어난 탓에 BIS 비율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산업은행도 비우량 등급 기업에 대해 선별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종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산업은행도 바젤Ⅲ를 적용받는데 적정한 수준의 BIS비율을 유지하려면 지금처럼 한계기업을 무조건 지원해줄 수 없을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선별 작업을 거쳐 지원 대상을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yk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