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반발에 입법 '난항' 예고
금융감독당국이 기업에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강제 지정해주는 ‘감사인 지정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감사보수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는 기업, 재무제표를 직접 작성하지 않고 감사인에게 위탁하는 기업 등 부실감사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 같은 감사 규제 강화에 반대할 수 있어 입법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인 지정 확대 카드 ‘만지작’
26일 금융당국과 회계학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29일 열리는 금융감독자문위원회에서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 등을 포함한 ‘회계투명성 신인도 제고를 위한 방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감사인 지정제도 확대는 회계업계에서 지속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나 금융감독자문위원회에서 공식 보고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법상 감사인은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기업이 자유롭게 선임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정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강제적으로 감사인(회계법인)을 지정하고 있다. 법에는 기업공개(IPO), 관리종목, 감리결과 조치를 받은 기업 등이 열거돼 있는데 앞으로는 지정 감사 대상을 이보다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검토하고 있는 대상은 우선 감사보수가 지나치게 낮은 경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감사 수임료를 낮추면 감사 투입 인력과 시간이 줄어 감사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며 “평균보다 지나치게 낮은 감사보수가 책정된 기업은 부실감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대리 작성하는 기업도 지정 감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외부 감사인이 피감사회사의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해주는 것은 공인회계사법 위반이지만 상당수의 중견·중소기업들이 감사인에 재무제표 작성을 맡기는 관행이 퍼져 있는 게 현실이다.
○“저가 수주, 부실감사 유발”
금융당국이 지정제도 확대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감사 수임료 덤핑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부실감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같은 감사인을 선임한 기업의 올해 평균 수임료는 전년 대비 3% 증가한 반면 감사인 변경 기업의 경우 8.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법인 간 출혈 경쟁이 벌어지는 데다 기업들도 감사 품질보다는 저가 수수료를 제시한 감사인을 선호하는 데서 나타난 결과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이 국내 1위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 코스닥 상장업체였던 포휴먼 부실감사의 책임을 물어 14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등 회계법인의 감사책임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이 감사인 자유 선임 권한을 제한하는 것에 반발할 수 있어서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 의견 조율뿐 아니라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이번 자문위원회에서 회계투명성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보고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달 초 상장회사와 회계학계 등을 대상으로 회계투명성 인식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으며 이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