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타임머신 영화…"시간여행 상상력 녹여냈죠"
타임머신을 타고 24시간 후로 이동해 가져온 CCTV에서 연구원들이 불에 타서 죽는 장면이 나온다. 이 광경을 목격한 물리학자 우석은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자는 팀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뛰어든다. 한국 영화 최초로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스릴러 ‘열한시’(28일 개봉·감독 김현석)에서 배우 정재영(43·사진)이 타임머신 개발 책임자인 우석 역을 해냈다. ‘실미도’ 등에서 아날로그적인 개성을 각인시킨 그가 활동 반경을 디지털 세계로 넓힌 셈.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허무맹랑한 설정과 소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타임머신에 관해서는 외국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면서 호기심을 채웠어요.”

지금까지 나온 시간이동, 즉 타임머신에 관한 이론은 크게 두세 가지인데 이를 영화에 모두 녹여냈다고 한다. 박석재 KAIST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니 타임머신에 관한 모든 것은 가설이니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도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미래를 바꾸려 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짓이지요. 설령 하루 앞의 미래를 본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게 삶입니다. 하지만 실패할 줄 알면서도 덤비는 게 인간이죠. 그런 인간의 무모함과 무기력함, 나약함이 주제예요. 기술의 진보가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도 담아냈고요.”

아내가 자살한 원인을 캐기 위해 다른 연구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우석의 이기심도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이다.

“우석은 과학자지만 지적인 면모보다는 강한 개성과 비인간적이고 냉정한 성품을 드러내는 인물이에요. 강한 캐릭터에는 인간적인 면모도 있게 마련인데, 우석은 나쁜 면만 갖춘 셈이죠.”

그는 지금까지 강한 캐릭터와 유약한 인물을 절반씩 연기했다고 회고했다. ‘아는 여자’ ‘나의 결혼 원정기’ ‘김씨 표류기’ ‘바르게 살자’ 등에서는 유약한 인물을 연기했고, ‘실미도’ ‘강철중’ ‘이끼’ 등에서는 드센 캐릭터를 선보였다.

“유약한 인물로 출연한 영화들은 작품성에서 높은 평점을 받았고, 주로 드센 캐릭터를 연기했던 영화들이 흥행에는 성공했지요. 흥행작을 많이 접한 일반인들은 저를 강하고 드센 인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범한 용모에도 상업영화 주인공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평범함이야말로 자신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오디션에서 거의 다 떨어졌어요. 너무 평범하다는 게 이유였지요. 개성 있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형을 해야 하는 얼굴도 아닌, 애매한 얼굴이라는 평가였어요. 하지만 (잘생겼어도) 여러 번 보면 질릴 수 있고 자꾸 볼수록 정이 갈 수도 있는 게 사람의 용모죠. 평범한 용모는 배역에 녹아들기 쉬운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 배역에는 저 사람이구나’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배우를 영화 속 인물로 기억하니까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