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재부품 강국'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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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당근을 주는 것보다 족쇄를 없애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소재·부품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지원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26일, 전자·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부 정책대로라면 이 기업도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터라 쌍수 들어 환영할 줄 알았지만 “누가 그런 걸 해달라고 하던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2016년까지 2조원의 정부 자금이 국내 소재·부품 시장으로 들어오고, 이 분야의 중소·중견기업 수를 두 배 이상 늘리겠다는 게 정부 지원책의 골자인데 반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임원은 “정부가 번지를 잘못 찾았다”고 입을 뗐다. 한국 축구가 처음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때는 지원책이 우선돼야 하지만 4강에 진입하려면 중요한 게 따로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그는 “소재 분야 세계 5위인 한국을 4위 안에 들게 하려면 선수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소재 산업을 키우겠다는 건 고맙지만 정책 방향은 여전히 후진국형에 머물고 있다”고도 했다.
‘선진국형 정책’이 뭔지 궁금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안전사고를 막는다는 이유로 연구개발(R&D)용이든 소량이든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면 무조건 정부에 등록하도록 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은 세계 4대 소재 강국 진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화평법과 화관법의 하위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업 의견을 듣고 있지만, 공청회 때마다 환경부 공무원들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기업인들의 본능”이라고 했다. “직언하면 또 조사하고 점검 나올 텐데, 어떻게 솔직히 말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산업부 장관이 소재 산업 지원책을 발표하기 전에 환경부 장관부터 말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소재·부품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지원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26일, 전자·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부 정책대로라면 이 기업도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터라 쌍수 들어 환영할 줄 알았지만 “누가 그런 걸 해달라고 하던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2016년까지 2조원의 정부 자금이 국내 소재·부품 시장으로 들어오고, 이 분야의 중소·중견기업 수를 두 배 이상 늘리겠다는 게 정부 지원책의 골자인데 반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임원은 “정부가 번지를 잘못 찾았다”고 입을 뗐다. 한국 축구가 처음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때는 지원책이 우선돼야 하지만 4강에 진입하려면 중요한 게 따로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그는 “소재 분야 세계 5위인 한국을 4위 안에 들게 하려면 선수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소재 산업을 키우겠다는 건 고맙지만 정책 방향은 여전히 후진국형에 머물고 있다”고도 했다.
‘선진국형 정책’이 뭔지 궁금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안전사고를 막는다는 이유로 연구개발(R&D)용이든 소량이든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면 무조건 정부에 등록하도록 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나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은 세계 4대 소재 강국 진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화평법과 화관법의 하위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업 의견을 듣고 있지만, 공청회 때마다 환경부 공무원들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기업인들의 본능”이라고 했다. “직언하면 또 조사하고 점검 나올 텐데, 어떻게 솔직히 말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산업부 장관이 소재 산업 지원책을 발표하기 전에 환경부 장관부터 말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