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한국에 제공하는 자금은 청구권 해결이 아닌 경제협력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막판까지 고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 징용 피해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26일 양국 정부가 그동안 공개한 한·일 회담 관련 문서에 따르면 일본은 청구권 협정이 타결되기 한 달 전인 1965년 5월14일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 측의 (자금)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 차원”이라고 밝혔다.

니시야마 아키라 회담 대표 등 일본 협상단은 “예전부터 (자금을) ‘한국의 경제 개발을 위해’ 제공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한국 측에서는 청구권의 대가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석상에서 한국 측이 “결국 일본 측의 입장은 순수한 경제협력이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하자 일본은 “그렇다”고 못박았다.

1965년 6월22일 서명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타결된 것도 일본의 이런 입장이 반영된 타협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시 일본 정치권은 한국에 제공한 청구권 자금을 ‘독립 축하금’이라고 격하하기까지 했다.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청구권 협정은 양국 간에 남아 있던 재산 반환 청구권이 주된 내용이었을 뿐 징용이나 위안부 피해자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