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전문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해 최근 방영한 ‘킬링 케네디’.
다큐멘터리전문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해 최근 방영한 ‘킬링 케네디’.
기원전 221년, 진왕 영정은 초국의 수호신으로 불리던 항연을 물리치고 사분오열된 전국을 통일한다. 그즈음, 한 작은 마을의 건달 유방은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자객을 붙잡아 고문하며 정체를 캐낸다.

다큐멘터리전문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NGC)이 지난 9월30일부터 매주 월~목요일 오후 10시에 인기리에 방영 중인 80부작 중국 역사시리즈 ‘초한지’의 내용이다. 시청률은 이 채널 평균의 두 배인 0.2% 수준. 이 프로그램은 NGC와 디스커버리, 히스토리 등 3강이 지배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채널 시장에 불고 있는 새 흐름을 잘 보여준다.

‘초한지’는 다큐멘터리가 정보 중심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재미와 감성을 앞세운 엔터테인먼트 형식으로 진화한 작품이다. 최근 다큐멘터리는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와 비슷한 리얼버라이어티나 팩추얼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예전의 단편 위주에서 탈바꿈했다. 대본과 연출을 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연출과 대본에 따라 만들고 있다.

NGC 관계자는 “우리는 스스로 더 이상 ‘다큐멘터리채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사실에 기반한 모든 장르의 콘텐츠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의미에서 ‘팩추얼엔터테인먼트채널’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초한지 외에도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준 ‘킬링 링컨’과 케네디 부부와 암살자 오즈월드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지막 행적을 담은 ‘킬링 케네디’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히스토리채널은 바이킹의 전설적인 영웅 로스브로크의 모험과 도전을 연대기로 그린 ‘바이킹’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대역 배우를 등장시켜 부분적으로 상황을 재연했던 예전과 달리 전체 구성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연출했다.

호스트(진행자)를 앞세운 예능프로그램 형식을 채용한 것도 대세다. 디스커버리채널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극한 상황에서 놀라운 생존능력을 보여주는 베어 그릴스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SBS ‘정글의 법칙’도 이 프로그램을 본떴다. 지난 26일 국제 에미상을 받은 MBC 다큐멘터리 ‘‘안녕?! 오케스트라’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는 과정을 4부작으로 담았다.

각국의 지역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NGC와 디스커버리채널은 미국 본사에서 70~80%를 제작하고 나머지 20~30%를 각국에서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궁중요리 IT기술 한류 등을 담은 5부작 ‘코리아 넥스트’를 제작해 아시아 34개국에 방송했다.

NGC는 최근 10부작 ‘아시안호러스토리’를 방영한 것을 비롯해 한국 최고 감독들의 연출세계를 살펴보는 3부작 ‘거장’, 한국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캠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캠핑게임’ 등을 선보였다.

제작비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회수하고 있다. NGC는 매년 2000억원의 예산으로 1000편 이상의 콘텐츠를 제작해 세계 196개 국가에 방영한다. 2000억원을 1000편으로 나누면 편당 제작비는 2억원 정도다.

세계 170개 국가에 진출한 디스커버리 채널 관계자는 “한국도 이제는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규모를 키워야 할 시점”이라며 “진출 초기에는 해외시장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해외 사업자와 손잡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