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미술인들이 관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규탄대회를 벌이고 있다.
27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미술인들이 관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규탄대회를 벌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불통'…미술인 뿔났다
“82%가 서울대 출신이라니요. 혈세가 투입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특정 대학 동문전 열어주자고 세운 것은 아니잖아요. 서울대 출신인 정형민 관장(사진)과 최은주·장엽 학예팀장을 즉각 퇴진시켜야 합니다.”

미술계 화합을 다지는 모두의 잔치가 돼야 할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이 미술계의 문제점과 환부를 드러내며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국미술협회를 비롯한 100여개 미술단체는 지난 27일 오후 소격동 서울관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파행사태를 바로잡기 위한 범미술인 대책위원회’는 “서울관 개관전이 미술현장의 다양성을 외면한 채 특정 대학의 동문전으로 전락했다”며 “미술계와 불통하는 정형민 관장은 사퇴하고 이를 방관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서울관 개관전의 하나로 열린 ‘자이트 가이스트-시대정신’전. 정영목 서울대 미대 교수가 기획한 이 전시는 초대 작가 대부분을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 미술계 원로들의 분노를 샀다는 후문이다. 특히 서울대 미대 교수 출신 작가가 절반을 차지한 점도 지적됐다. 이에 대해 최은주 학예1팀장은 “작가 선정은 전시기획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대 중심으로 운영돼 온 것도 반발을 키웠다. 최근 서울관 인원 충원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을 학예관과 학예사로 다수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정 관장 취임 이후 특정 대학 출신 미술관 운영위원 선정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미술계 원로와 단체장들에 대한 홀대도 문제를 부풀린 배경이 됐다. 한 원로 작가는 “미대 강사도 초청장을 받았는데 국내 최대 3만5000여 회원을 거느린 미술협회에 단 한 장의 초대장도 보내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신제남 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도 “국군기무사령부 터에 서울관을 건립하기 위해 고생한 것은 50만 미술인인데 잔칫상은 엉뚱한 사람들이 벌인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은“국립현대미술관은 공공미술관인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봉사하는 서비스기관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이번 사태는 그간 누적된 미술인들의 분노 표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조강훈 미술협회 이사장은 “미술계 인사가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야 하며 외부 자문기구를 설치해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7일 저녁 미술협회 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 등 미술계 대표 7명은 정 관장을 면담하고 ‘30일까지 거취를 밝히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