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군인 채명신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다. 전쟁은 더욱 그렇다. 동양고전인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는 모두 난세의 처세술을 가르치지만 그 자체로 전쟁과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휴먼드라마다. 영웅과 그들에 맞서는 간웅들의 이야기에 빨려들며 긴 겨울밤을 지새웠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온갖 고난 끝에 결국은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들의 오디세이는 성장기의 로망이었다.

전쟁이 대스타를 만든 것은 동서와 고금이 마찬가지였다. 일본 전국을 제패한 도요토미가 정명가도(征明假道)라며 임진년에 침략전쟁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불멸의 충무공은 아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순신은 변방의 한직, 수병 부대장으로 생을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왜의 침략이 그를 조선의 왕 선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역사의 거인, 성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코르시카 출신의 군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도,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가 된 것도 그렇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1950년대에 8년간 냉전시대 세계를 주도한 리더십도 2차대전의 승전 주역이었기에 가능했다. 드골, 미테랑 같은 프랑스 대통령도 레지스탕스전 리더 경력이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큰 자산이었다. 모두 전쟁이라는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이다.

용맹과 전략, 희생과 전우애, 집념과 모범 같은 군인정신이 승리를 가져오는 것일까. 전차와 보급품이 아니라 이런 정신적 덕목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인가. 전쟁의 영웅들에게서 후세 사람은 그런 정신의 가치를 배우는 것인지 모른다. 전쟁영웅 가운데 권력자로,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하지 않고 끝까지 군인의 길만 걸은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참군인이다.

어제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영면한 채명신 전 육군중장을 통해 전쟁영웅의 면면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1965~1969년 초대 주월(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그는 당연히 그에게 주어진 넓은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단지 3.3㎡의 사병묘역에 누웠다. 살아서 눈물지으며 그리워하곤 했던 사병 전우들 곁에 눕겠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른 것이었다. 월남전 사령관으로 이름 석 자를 날린 그는 전쟁 이후에도 군인답게 처신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3성 장군 채명신은 그 전쟁에서 희생된 971명의 사병들과 더불어 영원한 오(伍)와 열(列)을 맞춰 마지막 길에서까지 군인의 표상을 보여줬다. 그의 유언을 보면 육군장 영결식장에서 들린 ‘불멸의 군인’ ‘영원한 지휘관’이란 조사가 결코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