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빠져 의대 졸업도 동기들보다 많이 늦었어요. 의사가 된 뒤 돈이 좀 생기면서 한 해에 한 200편 이상을 본 것 같아요.”

경기 수원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의 김흥모 원장(53·사진)은 연극에 미친 사람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병원 일을 마치고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서울연극협회를 찾는 김 원장을 지난 25일 저녁 서울연극협회에서 만났다.

“지난 3월 심리치유사랑방을 열었어요. 한 10년 정도 된 것 같네요. 벌써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인데 서울연극협회에서 자리를 내줘 매주 월요일 이곳으로 옵니다. 연극인들은 현실의 자아와 극중 캐릭터 간의 충돌로 마음병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연극인은 경제적으로 힘들어 병원을 쉽게 찾지 못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심리치유사랑방은 마음병을 앓는 연극인을 무료 진단·처방해 회복을 돕는 ‘무료 보건소’ 같은 곳이다.

“사랑방에서 이뤄지는 심리 치료는 사실 많지 않아요. 아무래도 알려진 공간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와 인근 카페에서 만나 상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갑작스런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급히 만나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그 사람은 지금 꽤 유명한 배우가 됐죠.”

김 원장이 연극에 빠진 것은 고교시절 ‘햄릿’ 공연을 보면서부터다.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적 선택으로 1980년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입학 이후에도 연극에 빠져 살았다. 의대 연극동아리인 ‘세란극회’에 들어가 연극반장도 맡았다. 동기들보다 한참 늦게 의사면허를 받은 그는 병원을 연 이후에도 연극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직접 무대에 오르진 못했지만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게팅아웃’ 희곡을 번역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안산시 정신건강센터장으로 있으면서 정신장애인 가족의 삶을 다룬 연극 ‘하얀 자화상’으로 정신건강연극제를 기획, 이후 7년째 연극제 자문·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지난해 무대에 올랐던 트로트 음악극 ‘뽕짝’은 김 원장이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연극인들을 위해 연극인협동조합, 연세대 의대 동문회와 함께 연극인 의료비 지원사업도 추진 중인 김 원장. “연극을 한마디로 하면 ‘관계’”라며 연극으로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의 예술인 연극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시각도 연극을 통해 많이 바뀌는 것을 봐왔고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정신장애인들로만 구성된 극단을 만들어 그들을 사회로 돌아오게 하고 싶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