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 한벌 제작공정만 1700개…보이지 않는 고급스러움 추구"
영국 런던의 상류층 남성들은 정장을 맞출 때 새빌 로(Savile Row)로 간다. 정통 영국풍의 최고급 맞춤 정장 가게가 오밀조밀 모인 거리다. 1803년 문을 연 ‘데이비스 앤드 선(Davies&Son)’은 새빌 로의 터줏대감 중 하나다. 영국 왕 조지 5세, ‘윈저공’ 에드워드 8세를 비롯해 왕실 귀족과 현대 정치·경제·문화계 저명인사들의 옷을 210년째 만들고 있다.

데이비스 앤드 선이 최근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연 4회(2·5·9·11월) 장인이 방한, 맞춤 제작을 의뢰한 소비자의 치수를 잰 다음 영국에서 옷을 완성해 보내주는 비스포크 트립(bespoke trip)을 시작한 것. 가격은 한 벌에 최저 800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넘나든다.

한국 진출을 기념해 방한한 앨런 베넷 대표(마스터 테일러·사진)를 만나 영국식 맞춤 슈트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15세 때 수습생으로 입문해 평생을 맞춤 양복에 바친 명장으로, 1997년 이 브랜드를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한국인에겐 생소한 브랜드다.

“데이비스 앤드 선은 마케팅에 의존한 적이 없다. 기존 고객이 지인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210년간 영업해 왔다. 품질로 승부한다는 자존심이다. 비스포크 트립을 통해 미국,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일본에 진출했고 전체 물량의 90%가 수출이다. 이번에 한국을 추가했는데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와 뭐가 다른가.

“유럽에는 실력 있는 맞춤 양복 장인이 많지만 한국에서 그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받긴 어렵다. 많이들 하는 게 기성 스타일에 사이즈만 바꾸는 MTM(made to measure) 아니겠나. 우린 고객 고유의 체형을 측정해 패턴을 뜨고 기록해 영구 보관하는 비스포크를 추구한다. 훨씬 더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다.”

▷어떤 스타일의 정장을 만드나.

“고객이 멋져 보이도록 만드는 게 우리 임무다. 살집이 있든 말랐든, 키가 크든 작든, 등이 곧든 굽었든 최선을 다해 작업한다. 굳이 우리의 스타일이라 한다면 직선의 어깨 라인, 도톰한 어깨 패딩, 살짝 강조한 허리선, 약간 느슨한 주름을 선호한다.”

▷맞춤 정장은 이탈리아도 유명한데.

“영국 슈트는 슈트의 원조이고, 품질이 최고 강점이다. 영국 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해 탄생한 옷이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고급스러움에 더욱 신경을 쓰는 ‘슈트 철학’이 있다. 공정 수가 평균 1700여개로 이탈리아 슈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드러나지 않는 안쪽에 손이 많이 가서다.”

▷어떤 브랜드를 ‘동급’으로 치나.

“가격대나 수작업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등을 고려하면 이탈리아 ‘키톤’(이건희 삼성 회장 등이 자주 입기로 유명한 명품 정장 브랜드)을 경쟁자로 볼 수 있겠다.”

▷소량 생산 체제여서 사업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상위 1%를 지향하는 비즈니스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숙련된 인력도 그만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리는 24명이 재단부터 재봉, 다림질까지 공정별 분업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