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회계사들의 '밥그릇 투정'
“기업들은 회계감사를 귀찮은 규제로 생각할 뿐입니다. 감사보수는 그야말로 헐값이고요.” “‘을(乙) 중의 을’인 회계사가 어떻게 감사 독립성을 운운합니까.”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회계제도 개혁안 공청회는 한마디로 공인회계사(CPA)들의 성토장이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대형 비(非)상장회사에 상장사 수준의 회계감독규율을 적용하고, 사원들이 주주인 유한회사도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회계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의 자산기준이 현행 10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상향 조정됨에 따라 약 2000개의 중소기업이 외부감사 대상에서 빠진다. 경영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애플코리아 등 외국계 기업을 감사 대상에 포함하는 대신,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회계사들은 “개혁안이 회계투명성을 후퇴시키고,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정부 정책과 배치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감사기준이 선진국들과 비교해 느슨한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는 총자산이 155만유로(약 22억원)만 돼도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고, 독일은 484만유로(약 69억원)부터 감사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10배 이상인 미국은 1000만달러(약 105억원)가 기준이다.

회계업계에선 개혁안이 실행되면 감사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걱정한다. 이미 상당수의 유한회사가 감사를 받고 있어 신규 수익 창출이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자산 기준을 높여 감사 대상이 줄면 연 240억원 정도의 수입이 감소한다는 게 회계업계의 추산이다. 적정 감사보수를 지급해야 감사 품질이 유지되고, 회계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건전한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해 자본시장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장에선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혁안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유한회사의 공시정책과 감독당국 감리조직 확대 등에 대해선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회계사들은 온통 ‘밥그릇’에만 관심있어 보였다.

하수정 증권부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