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태풍] "원·엔 환율 900원대 시간문제"
원·엔 환율의 하락 속도가 심상찮다. 100엔당 1030원대로 가파르게 떨어지던 원·엔 환율은 불과 5거래일 만에 1020원대로 추락했다. 원화값이 달러당 1060원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하락세를 이어가던 엔화값이 103엔대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한 한국 외환당국의 안간힘에도 엔저 가속화로 원·엔 환율 하락 흐름을 돌려놓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연내 9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원·엔 환율, 보름 만에 50원 급락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원 오른 1061원20전에 마감했다. 3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며 1060원대로 올라섰다. 미국 제조업 지표 개선에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7일 만에 순매도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엔·달러 환율은 더 큰 폭으로 뛰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환율은 장중 103.37엔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103.73엔)에 바짝 다가섰다. 이날 서울과 도쿄 외환시장의 달러 대비 환율로 산정한 100엔당 원화 환율은 1027원70전(오후 3시 기준)이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인 9월11일(1011원84전) 이후 5년3개월 만의 최저치(한국은행 고시 기준)다. 지난달 14일 이후 보름여 만에 50원 이상 급락했다.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서로 다른 정책 방향이 양국 통화 흐름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점점 늦춰지는 반면 일본에선 추가 완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엔화 약세에 베팅하는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시장이 달러 강세 재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엔 1000원 붕괴 우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갑자기 빨라지지 않는 한 원화 강세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IB)은 1~2분기 평균환율을 1000원대 초반으로 보고 있어 분기 중 1000원 선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하고 않고 있다.

보다 큰 문제는 엔저 가속화다. 9개 IB가 예상하는 3개월 엔·달러 환율 전망치는 102.7엔이지만 모건스탠리와 도이체방크는 110엔, 111엔까지 전망하고 있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60원에 머문다 해도 엔화 환율이 106엔대까지 오르면 원·엔 환율은 세 자릿수에 진입하게 된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원고·엔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1000원 선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1분기, 삼성선물은 상반기 중 100엔당 95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이 같은 양상이 현실화되면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업종의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내수 부진 속에 수출마저 둔화할 경우 장기 저성장이 고착화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정환/김유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