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국회정상화 첫 단추는 외촉법 개정이다
배가 부른 모양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 밤낮을 모르고 뛰어다니던 시절은 까맣게 잊었다. 2조3000억원짜리 초대형 투자를 이토록 깔아뭉개고 있으니 말이다. GS와 SK의 외국인 합작투자 건이다.

두 회사는 외국 기업과 세 건의 석유화학 합작투자를 추진 중이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걸렸다. 합작사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지주사의 증손회사는 100%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탓이다. 물론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다. 두 회사는 합작이라는 게 혼자 일이 아닌데다 전문·체계화를 추진하려면 증손회사 설립은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한다. 공정거래법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부지하세월이다. 그래서 여당과 정부가 낸 아이디어가 외국인투자촉진법의 개정이다. 외국인 투자는 국내 일상사가 아니니 이 경우에 한해 증손회사 지분율을 50%로 낮춰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야당이다. 총력 반대다.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를 보면 야당이 이 사안을 얼마나 정략적이고 감정적으로 대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참으로 유치한 공청회였다.

먼저 야당 의원이 나서 타박을 시작했다. 우선 외국인 투자가 1조600억원에 불과한데 왜 2조3000억원으로 오해하도록 얘기하느냐는 지적이다. 맞다. 외국인의 총 투자액은 1조600억원이다. 나머지는 GS와 SK가 넣는 자금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합작이 불발되면 어떻게 되나. 투자총액은 0원이다. 정말 한심한 타박이다. 그게 왜 중요한 논점인가.

왜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 난리냐는 것도 시빗거리다. 답답한 질문도 한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외국인 투자다. 게다가 중국에 맞서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우월적 구조로 재편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그러니 총리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설 수밖에. 이 야당 의원, 재벌 특혜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파라자일렌 투자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어디 있는가. 골목상권도 아니고, 갑을 관계도 아니다. 그저 생트집이다.

왜 고용유발 효과를 부풀리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역시 초등학생 수준이다. GS와 SK가 직접 고용하는 인력은 194명이다. 그런데 전후방 효과라는 게 있다. 그 효과를 추정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산업연관표다. 그래서 계산한 이들 공장의 직간접 고용효과가 좁게 보면 연간 1100명이고 넓게 보면 1만4000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공장 건설 과정에 20만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뭘 부풀렸다는 건지.

이들에 못지않은 학자가 발언권을 얻었다. 평소 그렇듯 대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더니, 봐주는 듯 대안이라는 걸 내놓았다. 외촉법을 고치려 하지 말고 정무위에 가서 공정거래법을 바꾸라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여기에 다른 야당 의원이 거들었다. 법으로 안 될 걸 알면서 계약을 했다면 사고치고 와서 결혼시켜달라는 것 아니냐고. 이쯤 되면 이 두 사람은 건망증 환자로 보는 게 옳다. 두 회사가 합작 협상을 벌이던 18대 국회 당시 정무위는 공정거래법의 증손회사 지분율 완화에 합의한 적이 있다. 그 법안을 월권으로 깔아뭉개다가 자동 폐기시킨 것이 법사위 야당 강성 의원들이다. 이걸 왜 모른 척 하시나.

몇몇 수출 기업 덕분에 먹고사는 구조다. 공단에 가보라. 장기 불황 탓에 웬만한 공장은 인력 구조조정 중이다. ‘함바집’이 밥그릇 수가 줄어 문을 닫을 지경이라면 할 말 다했다. 일자리는 날아가고, 넛크래커 신세인 기업들은 신규 투자 기회를 놓쳐 해외 시장을 앉아서 잃고 있다. GS와 SK의 투자도 이 기회를 놓치면 없던 일이 돼 버린다. 파트너가 뭐가 아쉬워 골치 아픈 한국을 고집하겠는가.

외국인들이 다 빠져나가 금붙이를 모아 나라를 살린 것이 십수 년 전이다. 그 사이 배가 불렀는지 외국인 투자 공장 건설을 강아지 집 짓듯 여기는 정치인들이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쨌든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한다. 민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외촉법 개정부터 서두르는 것이 옳다.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려주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