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외교결례까지 야기한 국회 파행
“외교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례죠. 하루 전에 회담 취소를 통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여야가 지난 3일 밤 뒤늦게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불똥이 기획재정부로 튀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4일부터 시작된 예산 국회에 발목이 잡히면서 5일로 예정된 인도 현지의 한·인도 재무장관 회담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 기재부는 이날 인도 정부에 부랴부랴 양해를 구하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안의 연내 처리와 경제활성화 및 민생법안 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속내는 “국회가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인도는 한국으로서는 아홉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자 브릭스(BRICs)를 대표하는 국가 중 하나”라며 “손바닥 뒤집듯 함부로 일정을 변경해서는 안되는 나라”라고 말했다. 인도는 지금까지 주요 7개국(G7)과 브릭스 외에 유일하게 한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체결한 핵심 교역국이다. 기재부는 우선 국장급 당국자를 보내 실무협의를 한 뒤 내달 초 현 부총리가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 부총리의 경제외교 ‘펑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0월에도 국정감사 일정이 늦게 잡히는 바람에 한·브라질 재무장관 회담을 연기해야 했다. 당시 브라질은 19조원 규모의 고속철도(TAV) 건설 사업자 선정을 앞둔 상황이었다.

이러다 보니 정부 내에서 장관 일정을 짜는 실무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는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다. 지난주에도 국회 예결위가 파행을 겪으면서 대외경제장관회의 일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소동이 빚어졌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은 빈사상태에 있는 국회가 애꿎은 정부를 시녀로 삼아 횡포를 부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제발 법을 지켜줬으면 합니다. 장관부터 국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회에 붙잡혀 있으면 정부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국회 정상화를 기대하며 한 달 넘게 허송세월했다는 당국자의 하소연이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