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농산물 개방 韓·美 FTA보다 보수적"
쌀·분유·과일·명태 등 민감품목 개방 안해
TPP 가입국과 FTA 체결…한국 우군 확보
통상당국 관계자가 5일 한국과 호주 간 FTA 협상 타결에 대해 내린 자평이다. 얻을 것은 얻었고, 방어할 것은 방어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실제 한국은 그동안 체결한 FTA 사상 최초로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 대해 ‘관세 즉각 철폐’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소고기 시장 개방은 한·미 FTA 수준 이상으로 지켜냈다.
◆양국의 전향적 양보
한국과 호주는 2009년 5월 FTA 협상을 시작했지만 1년 만인 이듬해 5월 중단했다. 호주 쪽에서 한국이 요구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도입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ISD는 FTA 체결국가가 협정상 의무나 투자계약을 어겨 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해당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때문에 자원개발 등 호주에 투자한 기업이 많은 한국으로서는 ISD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반면 투자를 받아들이는 호주는 ISD를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난 9월 협상이 중단된 지 3년4개월 만에 호주가 ISD를 탄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오면서 협상 재개를 위한 숨통이 트였다. 호주에 한국은 4대 교역국인 만큼 통상 전략상 중요한 나라다. 게다가 지난 9월 총선에서 야당인 자유당이 ISD 도입 반대를 고수했던 노동당을 이기면서 호주 내 분위기가 급반전됐다는 설명이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호주는 한국이 농축수산물 수출 경쟁국인 미국과 FTA를 맺은 데다 또 다른 경쟁 국가인 뉴질랜드, 캐나다와 FTA 체결을 추진하면서 협상 조기 타결을 원했다”고 말했다.
한국도 협상 테이블에 다시 못 앉을 이유가 없었다. 호주는 7대 교역국이자 한국이 최근 관심을 표명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연간 111만2000대 규모인 호주 자동차 시장도 대폭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마침 호주 내 포드 공장이 철수를 계획하고 있는 등 호주에서 ‘값싸고 질 좋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우 실장은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즉시 철폐할 경우 호주 소비자들의 편익이 올라갈 것이란 점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결국 양국은 지난달 15일 공식 협상 재개를 선언한 지 20일 만에 전격적으로 합의를 봤다.
◆자동차 수출 확대 기대
이번 FTA 협상 타결로 가장 수혜를 받을 품목은 단연 자동차다. 현재 호주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경쟁국인 일본은 20~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호주와 태국이 맺은 FTA로 태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도요타가 우회수출을 하면서 관세 혜택을 얻은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관세율 5%가 즉시 철폐되면 한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상협력팀 이사는 “한국은 호주로 연간 14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한다”며 “관세가 사라지면 그만큼 가격이 인하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자동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관세율 5%)과 전기기기(5%), 일반기계(5%) 등도 수출 확대에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현재 5%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관세는 3년 내 사라질 예정이다.
◆쌀은 개방에서 제외
한국은 쌀, 분유, 과일, 대두, 감자, 굴, 명태 등 주요 민감 농축수산물은 개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소고기를 포함, 509개 농축수산물에 대한 관세는 1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김덕호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은 “협정 발효 후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비율이 전체 농축수산물의 56%에 해당한다”며 “한·미 FTA가 33%인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미국과의 협상보다 많이 방어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호주와 FTA 협상을 타결하면서 향후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FTA 협상에도 실질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TPP 가입국 간 사전협의를 진행하는 데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호주뿐 아니라 캐나다, 뉴질랜드도 한국의 TPP 관심 표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캐나다와의 FTA 협상도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미현/전예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