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왼쪽부터),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주훈 KDI 부원장이 5일 한국경제신문 17층 회의실에서 서비스산업 발전 정책과제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왼쪽부터),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주훈 KDI 부원장이 5일 한국경제신문 17층 회의실에서 서비스산업 발전 정책과제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정부마다 외치던 구호였다. 수출 의존형 국내 경제구조에서 탈피해 고부가가치 내수산업을 키우지 않으면 저성장을 극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양극화를 둘러싼 이념 갈등에다 이익집단 반발 등에 부딪쳐 매번 좌절됐다. ‘고용률 70%’ 슬로건을 내건 박근혜 정부 역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 종합대책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내 최고 전문가 3명을 초청, 서비스산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향후 정책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전국은행연합회 회장),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이 참석했다.

'K팝' 못잖은 'K의료'…"진입장벽 허물어 외국인 환자 잡아야"
◆이학영 편집국 국장대우(사회)
=국내 내수서비스 산업의 현황부터 짚어보자.

▷김주훈 KDI 부원장=한국의 서비스업 분야 고용률은 70%로 다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왔다. 하지만 부가가치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다. 그만큼 안 좋은 일자리가 많다는 뜻이다. 해답은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최근 들어 개발도상국의 서비스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서비스산업 블랙홀’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관광 수요가 많은데, 우리가 빨리 뛰어들어 이런 수요를 선점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료 관광 분야 규제를 적극 풀어야 한다.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지금 우리가 필요한 건 일자리다. 제조업 부문 일자리가 1991년 500만개까지 늘어난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작년 400만개로 줄었다. 기댈 곳은 서비스산업밖에 없다. 도소매, 음식·숙박, 택시·운수 등 저부가가치 서비스는 이미 공급과잉, 과당경쟁 상태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디자인 콘텐츠 등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에 있는데, 이런 산업은 제도적인 진입장벽 때문에 크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장 큰 진입장벽은 무엇인가.

▷박병원 회장=기술과 자본이 가장 큰 장벽이다. 디자인 콘텐츠 등의 업종은 지식 장벽 때문에 진입이 어렵고, 의료 관광 등은 굉장히 자본 집중화된 산업이 돼버렸다. 병원이 외국인 환자까지 유치하려면 몇천억원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다. 학교로부터 200m 이내 지역을 규제하는 등의 시대착오적인 제도도 문제지만, 몇천억원 자본을 동원해야 하는 산업에 자본 투입을 못하게 막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의료업 해서 돈벌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대학병원 등 대부분 다 적자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관광 의료 교육업에 자본이 안 들어온다.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세상은 이미 지식정보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진 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아이폰을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다. 미국 본사는 서비스로 먹고사는 회사다. 한국 제조업이 밖으로 나가려면 서비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은 수출이 있을 수 없고, 법률 광고 디자인 같은 부분이 안 나가면 제조업 자체도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융합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산업 육성이 매번 구호로만 그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현정택 부의장=기본적인 인식 전환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라는 걸 식당에서 하는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은 서비스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데가 식당이나 슈퍼마켓이다. 간판만 달면 곧바로 영업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들어가기가 어렵게 돼 있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따도 쉽지가 않다. 한쪽에서는 육성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로 묶으려 한다.

▷박병원 회장=한국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가 제조업에 비해 낮은 이유가 있다. 가격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가를 눌러놓고 획일화하니, 돈 더 내고 고급 서비스 받을 고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비스 받고 싶으면 외국으로 가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고부가가치가 되겠나. 제조업에서는 고급화해 비싸게 파는 걸 장려하면서 서비스산업에서는 질 좋은 서비스 제공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은 게 한국의 서비스산업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사회=누구나 똑같은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는 공공성 문제도 서비스산업 발전의 장애가 아닌가.

▷현정택 부의장=맞는 지적이다. 설령 돈이 들어가도 자유롭게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공성’이다. 하지만 의료 분야만 봐도 20년 전보다 의료 공공성은 훨씬 나아졌다. 병원을 개방하면 공공성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다. 동반성장해야 한다는 명분론에 사로잡혀 무조건 막고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병원 회장=의료 공공성이 걱정된다면 부자들에게 고부가가치 의료로 돈 더 받아서 공공성을 유지하는 데 쓰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생각을 바꿔야 젊은이를 위한 일자리가 생긴다.

▷김주훈 부원장=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중진국 함정’이다. 제조업 수출로 잘 먹고 살고 있는데 서비스업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인식이 그것이다. 그래서 서비스업은 내수산업으로 묶고 경쟁을 억눌렀다.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자본주의 윤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밖에서 돈 버는 건 용납되는데, 이웃사촌 땅 사는 건 배 아파하는 식이다. 이런 생각을 깨지 않으면 서비스업 발전이 어렵다.

◆사회=최근 제3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개방형 병원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실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우면 안 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자는 일종의 징검다리론을 제안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정택 부의장=정책적으로 중간단계가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해보니 실제 성과가 저렇게 나타났더라’는 결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념적 갈등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면 몽골 공무원이 방한했을 때 하루 일정 비는 날 뭘 하는지 물어봤더니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치과치료를 받는다더라. 몽골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3년째 ‘필수 코스’가 됐다고 한다. ‘K팝’ 못지않은 이런 ‘K의료’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그런 수요를 끌어내기 위해 최소한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이라도 가능하게 해보이자는 것이다.

▷박병원 회장=중간단계를 얘기했는데, 여러 방법이 있다. 농사는 농민이 짓지만 농업은 전문가 집단이 하는 것처럼, 의사만 의료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꼭 모든 건물과 장비를 자가 소유해야 한다는 규제는 없으니,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동원해 병원 짓고, 의료장비를 리스로 집어넣고, 병원 건물을 렌트해주는 식으로 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된다.

◆사회=얼마 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이 1000만명으로 하와이와 발리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해외에서 온 관광객은 25%에 불과하다. 물론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 관광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박병원 회장=중국 관광객을 1000만명만 유치한다면 우리는 관광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려면 비행편, 호텔을 더 늘려야 한다. 중국 관광객 전용 식당도 짓고 해야 하는데, 그 어떤 것도 되는 게 없다. 한라산에 케이블카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어딜 가더라도 케이블카가 있다. 돈 벌 기회를 만들지 않고, 어떻게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나. 그걸 치열하게 고민하면 중국 관광객만으로도 우리 관광은 성공한다.

정리=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이익집단 반대' 설득…작은것부터 성과내야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는

'K팝' 못잖은 'K의료'…"진입장벽 허물어 외국인 환자 잡아야"
좌담회 참석자들은 서비스산업 발전이 헛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작은 것이라도 빨리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주훈 부원장은 “그토록 반대했던 약국 외 의약품 판매가 시작됐는데, 2~3주 전에 실제 이용해본 사람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했더니 부작용 우려가 2%에 불과했다”며 “시작되기 전에는 불안한데, 스텝 바이 스텝으로 보여주면 길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정택 부의장은 “복합리조트를 성공시킨 싱가포르의 경우 리콴유 총리가 ‘내 눈에 흙 들어오기 전에는 카지노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이스(MICE·전시박람회관광산업) 단지를 만들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며 “우리도 해외투자자들이 복합리조트를 짓겠다고 들어왔다가, 여러 기준 때문에 안 되고 있는데, 이건 한두 달 안에라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찬가지로 의료도 경제자유구역에 관심 있는 국내 병원이 많은데, 이들 수요부터 실현되도록 뒷받침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병원 회장은 의료 관광 교육 외에 금융 분야를 서비스업 핵심으로 육성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은 교육처럼 이념적 갈등도 없다. 금융은 산업의 기초토대인 만큼 금융허브를 추진하면 자연스레 의료허브 항공허브 교육허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