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땅에 브래독의 복귀는 모든 미국인의 희망이 됐다. 생을 포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새 영웅에게서 삶의 용기를 되찾았다. 그는 진정한 신데렐라 맨이다.”

잘나가는 라이트 헤비급 복서 짐 브래독(러셀 크로 분)은 사랑스러운 아내 매 브래독(러네이 젤위거 분), 귀여운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한 경기에 3000달러가 넘는 파이트 머니를 받으면서 뉴저지의 단독주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29년 7월18일 토미 라우랜에게 패한 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대공황이 발발했다. 그동안 번 돈을 뉴욕 택시회사 주식에 투자했던 브래독은 주가 폭락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잇단 패배와 부상으로 더 이상 링에 설 수도 없게 된 그는 부두에서 짐을 나르는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했다.

2005년 개봉한 ‘신데렐라맨’은 전대미문의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한 한 헝그리 복서의 실존 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뉴욕타임스의 오판

전통 경제학은 인구와 자본이 늘어나고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생산량이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여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경제가 큰 부침 없이 꾸준히 성장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단기적인 변동은 불가피하다. 일반적으로 경기는 <그래프1>에서처럼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선을 중심으로 확장-후퇴-수축-회복의 네 단계를 거친다. 이 같은 경기순환에서 대공황은 수축국면의 불황이 극단적으로 심화된 것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돼 1938년까지 전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당시 대공황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1929년 1월1일자 사설에서 “미국은 지난 12개월 동안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과거에 근거해 미래를 예측한다면 새해는 축복과 희망의 해가 될 것”이라고 썼다. 과연 그랬다.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물가수준은 화폐공급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화폐수량설’을 통해 당대 최고 경제학자의 반열에 오른 예일대의 어빙 피셔 교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공황이 들이닥치기 직전까지도 미국경제는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주가도 계속 오를 것(→어빙 피셔의 빗나간 호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중심국가로 올라선, 맹렬한 성장세를 구가해온 호황의 끝자락에 엄청난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피셔도, 브래독도 몰랐다.

실업률 3%→37%

먼저 주식시장이 우지끈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대공황 직전인 1929년 10월의 미국 주가지수는 1921년에 비해 400%나 치솟은 상태였다. 경기 확장으로 기업은 높은 이윤을 냈고 근로자들의 소득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 돈들이 끊임없이 증권시장으로 밀려들면서 저마다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다. 1929년 10월24일 1차 폭락이 이뤄졌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10월29일 말 그대로 무차별적 투매행렬이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은 완전히 붕괴됐다. 불과 열흘여 만에 시가총액 300억달러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미국 정부가 1차 대전 때 쏟아부은 전쟁 예산과 같은 금액이었다. 이 시기 피셔 교수가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자랑하며 운영하던 기업도 파산행렬에 내몰렸다. 그도 브래독처럼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주식시장에서의 재앙은 실물부문에도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총수요가 현저하게 감소한 가운데 소비심리와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실업률은 기록적으로 치솟았다. 1929년 3%에 머물던 도시지역 실업률은 1933년 37%로 급등했다.

영화 속에서 브래독은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전전했지만 아주 운좋은 날이 아니면 공을 치기 일쑤였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전기와 수도가 끊어졌다. 브래독 부부는 한겨울 냉방에서 감기 걸린 자녀들을 끌어안은 채 절망감을 곱씹어야 했다.

뉴딜정책과 케인스의 만남

주인공 브래독
주인공 브래독
하지만 살인적인 불황에도 끝은 있는 법. 1933년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으로 경제 재건에 나섰다. 그는 불황 탈출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총수요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기업들은 투자할 수 없고 고용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 루스벨트는 정부가 직접 수요를 늘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뉴딜정책은 유효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주장을 충실히 따랐다. 케인스는 정부의 재정지출 증대가 그 지출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는 ‘승수효과’(→케인스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하며 내세운 이론적 근거)를 강조했다. 그리하여 1933년 테네시강 유역에서 댐과 발전소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다. 미국 정부는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청년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을 모아 나무를 심고, 하천 수질 개선 활동 등을 시켰다. 한 달 급여는 30달러 정도. 10년간 이곳을 거쳐간 사람이 200만명에 달했다. 연방임시구제국도 열었다. 시장기능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여건에선 정부가 주도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는 케인스의 이론은 뉴딜정책의 부분적인 성공과 함께 한동안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일용직을 전전하며 정부의 빈민구제자금에 의지하던 브래독은 다시 링에 오를 기회를 얻는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두 주먹뿐이었다.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하고 오랜 부상에서 벗어난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이어간다. 결국 그는 1935년 서른살의 나이로 당시 ‘링의 살인자’로 불렸던 젊은 챔피언, 맥스 베어(크레이그 비에코 분)를 물리치고 챔피언에 등극한다. 브래독은 경기에서 번 돈으로 다시 뉴저지에 집을 살 수 있었고 가족들은 가난과 결핍에서 벗어났다.

브래독의 극적인 재기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던 대공황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쏜 사건이었다. 마치 한국 외환위기 당시 골프선수 박세리의 US오픈 제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피셔는? 그는 사업파산으로 살고 있던 집까지 은행에 넘어갔지만 예일대의 도움으로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았다.

한걸음 더! 스태그플레이션 왜 생기지?…한방 맞은 케인스

1970년대 이후 케인스주의를 대체하며 등장한 경제이론은 신고전주의다.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 재정의 역할을 부각시킨 케인스주의는 주류경제학으로 힘을 얻게 됐다. 뉴딜정책을 통해 정부가 시장 수요를 만들어내면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장에 대한 의심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바야흐로 ‘큰 정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1974년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정부의 개입정책, 재정 확장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일기 시작한 것.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상승)을 합성한 말로 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전까지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목표를 희생하면 다른 한 가지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케인스주의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물가를 포기하고 실업을 줄이는 정책을 애용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게 됐고 케인스주의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 신고전주의(→'큰 정부의 시대' 몰아낸 시장의 귀환)다. 국가 개입과 확장정책으로는 실업을 줄일 수 없고 인플레이션만 심화시킬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신고전학파는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 스스로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고전적 경제이론을 추종했다. 동시에 긴축재정과 규제철폐를 통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시장이 경제학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걸음 더! 필립스곡선…물가와 고용 사이 최적점 찾아라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1950년대 미국 경제학계에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놓고 ‘수요견인설’과 ‘비용인상설’이 맞서고 있을 때 영국 경제학자 A W 필립스는 1861~1957년 영국의 시계열(時系列) 자료를 토대로 임금상승률과 실업률 간의 일정한 함수 관계를 발견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상승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상승률이 올라간다(→필립스 곡선)는 것.

현대경제학의 필립스곡선<그래프2>은 이 같은 함수관계를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관계로 치환해 설명하고 있다.

우하향하는 필립스 곡선은 거시경제학의 주요 목표인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은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케인스학파는 이 이론을 토대로 실업과 물가 사이의 최적점을 찾아 경제정책을 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실업률은 높지만 물가상승률은 낮은 경기 침체기에 정부가 물가상승을 감수하면서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내리면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선은 오일쇼크 이후 선진국들이 불황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물가상승률은 낮아지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적 양상이 나타나면서 효용이 떨어졌다. 2000년대 초 미국 경제의 호황 때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필립스곡선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의 경험적 관계를 서술한 데 불과할 뿐, 그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까지 이론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정책 목표 사이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정책당국자의 시야를 한 차원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