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시간을 푹 자고 일어나 비행기 창을 열었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기내 방송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나는 불 밝힌 수백 개의 모스크 위를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닌

알라딘의 기분이 이랬을까. 모스크의 첨탑 사이로 날카롭게 걸린

초승달을 뒤로하고 살포시 착륙했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의 아름다운 외관.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의 아름다운 외관.
그랜드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
찬란한 영광의 도시 이스탄불


인구 1500만명의 거대도시 이스탄불에는 3개의 별이 있다. 성 소피아 대성당,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다. 이스탄불의 수많은 볼거리 중 이 세 곳이 유독 주목받는 것은 ‘동·서양 문화의 융합’과 ‘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를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로마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던 도시였다는 사실만으로 현재의 이스탄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충분히 가늠할 만하다. 육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유럽으로 가는 해상 무역로의 기착지였으며 파리에서 출발한 유럽 최초의 대륙횡단열차였던 오리엔트 특급(1977년 운행 중단)의 종착점이었다는 사실도 이 도시가 품은 과거의 영광을 대변한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눠진, 동서양 문명이 혼재되고 융합된 도시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발산하는 매력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 뭘 모를 땐 오묘한 마력에 시나브로 홀렸다가 뭔가 알게 되면 온전히 사랑에 빠지는 도시, 이스탄불을 걸었다.

비단길, 그 긴 여정의 끝

세계 최대의 석조 지붕을 가진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 모습.
세계 최대의 석조 지붕을 가진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 모습.
눈을 감고 ‘열려라 참깨’를 외쳤다. 여기는 그랜드 바자르의 시작점 중 한 곳인 ‘누르오스마니에 문’ 앞이다. 한반도의 신라 혹은 중국에서 출발해 험난한 고원과 사막을 건너와 짐을 푼 비단길 상인들이 가득한 상상을 하며 눈을 떴다.

500년이 넘는 세월을 관통하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그야말로 별천지다. 그랜드 바자르로 들어서는 출입문만 20여개, 상점은 5000여개다. 세계 최대의 석조 지붕으로 덮인 재래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길게 뻗은 메인 거리는 금은 보석, 카펫, 유리 공예품, 그릇, 향신료,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로 빼곡하다.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수십 개의 갈래 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들을 구경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진열한 물건을 구경하는 데 집중하거나 능수능란한 상인들에 맞서 흥정을 하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져 길을 잃기 십상이다. 지나온 길이 헷갈리기 시작하면 메인 통로로 돌아가 길을 찾으면 된다.

쇼핑의 가장 큰 묘미는 역시 흥정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2억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장이라 가격에 거품이 많다.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에서 30~60%까지 흥정이 가능하다. 그랜드 바자르는 터키에서 환율이 가장 좋기로 유명하다. 호텔이나 공항보다 좋은 조건으로 환전하고 싶다면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공존의 아름다움,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성 소피아 성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영롱하게 빛나는 성당 안은 경건하고 우아하다.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후 칠한 회벽을 벗겨내자 모습을 드러낸 성화들이 거룩한 기운을 뿜어낸다. 중앙에 서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기둥 하나 없이 세워진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 때문이다. 동서 77m, 남북 71m에 걸친 거대한 돔 지붕은 세계 건축학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비잔틴 건축의 꽃으로 손꼽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서기 36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지어진 후 폭동과 반란으로 유실과 복원을 거듭하다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지금의 형태로 완공됐다.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뒤에는 이슬람사원이 됐다가 1934년 비잔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공존을 대변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하기 위해 일체의 종교행위를 금지한 국립박물관으로 지정됐다. 최근에는 성 소피아 성당을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이슈가 되고 있다.

동로마 제국을 함락시킨 술탄 아흐메트 1세는 성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꿨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성당 내부에 메카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라브를 만들었으나 정방향이 예루살렘을 향해 있는 성당 내부 구조상 그 위치가 정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것. 술탄은 결국 성 소피아 성당과 마주보는 자리에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게 바로 블루 모스크다.

십자군 원정 당시 파괴된 히포드롬 광장의 돌을 자재로 사용한 블루 모스크는 수십 개의 돔 지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솟은 여섯 개의 첨탑도 아름답지만 그 백미는 내부다. 20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영롱한 빛이 들면 천장과 벽을 가득 메운 2만5000여장의 이즈니크 타일이 환상적인 푸른빛을 반사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라는 원래 이름보다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진 이유다. 천장에 걸린 수백 개의 오일램프와 바닥에 깔린 카펫에서 반사되는 붉은빛까지 더해져 빛과 색의 향연이 뽐낼 수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오롯이 공존하는 중심,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섰다. 오른편으로 청회색의 블루 모스크, 왼편으로 붉은빛의 성 소피아 성당이 우뚝 서 있다. 동서 문화의 교차점이자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심장부에 왔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스탄불(터키)=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