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발레단 미래, 이미 그려…행동으로 보일 것"
“제 머릿속엔 국립발레단 향후 계획에 대한 구상이 이미 꽉 차 있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나씩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용수뿐만 아니라 스태프, 청소부까지 모두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발레단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2014년 부터 3년간 국립발레단을 이끌 발레리나 강수진 씨(46·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사진). 예술감독(단장) 내정 직후인 12월 6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날 오후 슈투트가르트의 자택에서 한국경제신문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국립발레단의 청사진을 풀어내며 “제 명성이 아닌, 국립발레단 발전을 위해 예술감독직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강씨의 예술감독 내정 소식에 무용계에선 대체로 환영했지만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32년간의 외국 생활을 한 그가 한국 실정을 잘 모를 것이라는 게 이유다.

“나에 대해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한번도 문제를 비켜가 본 적이 없어요. 정면으로 부딪쳤죠. 시간을 주세요. 한국 시스템을 차근차근 배울 겁니다. 어제는 영(0)이었는데 오늘 바로 100을 원하는 한국 스타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입단 30주년이 되는 2016년 6월 은퇴무대까지 무용수로서 무대에도 선다. 내년 7월엔 ‘나비부인’ 서울 공연, 이듬해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오네긴’ 서울 공연에 출연한다. 강씨 혼자만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나 때문에 발레단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발레단을 맡는 이유가 너무나 확실하거든요. 1만%, 아니 온 우주를 다 합친 ‘유니버스 퍼센트’만큼 발레단 발전을 위한 것이니까요. 긍정적인 눈으로 지켜봐줬으면 합니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이는 터키인 남편이자 매니저인 툰치 소크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노 프라블럼(문제없어)’이라고 했어요. 남편이 무용수를 그만두고 여행사를 한 적이 있어서 한국 사정을 저보다 더 잘 알아요. 포장마차에도 가보고 개고기도 먹어볼 정도로 한국을 좋아해요.”

국립발레단 전용극장, 전속 오케스트라 등의 과제에 대해선 “귀국해서 무엇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인지 파악하고 스텝을 밟겠다”며 “하루아침에 뭔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보단 단계를 밟아나가겠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제가 지내온 ‘세계’에선 경쟁이 치열했어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어항 같은 세상이었죠. 단장직을 맡겠다고 결정하고 나서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해 저 자신도 놀랐어요. 행정적으로 부족한 점은 사람들을 만나 부딪치면서 배우고, 예술감독으로선 지금껏 쌓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외국에서 벌써 저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도 왔어요.”

강씨는 조만간 귀국해 임명장을 받은 뒤 다시 출국,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되돌아올 예정이다. 그는 모든 책임은 스스로 지겠다는 각오로 발레단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아랫사람이 잘못해서 제가 욕을 먹어도 괜찮아요. 결과물이 좋든 나쁘든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이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