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8일 오후 3시40분

사모펀드(PEF)가 최대주주인 기업들도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한국거래소가 상장심사를 할 때 적용하는 ‘경영의 투명성 및 안정성’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8일 “지금까지는 PEF가 경영권을 보유한 기업들은 향후 경영권 불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상장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일정한 경영권 안정 장치만 마련되면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길을 열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비상장사 중 PEF가 최대주주로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C&M, 네파, HK저축은행, 테크팩솔루션, 메가박스, 웅진식품, 할리스커피 등이다.

기업들이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면 거래소는 ‘양적요건’과 ‘질적요건’ 두 가지를 기준으로 상장 가능 여부를 심사한다. 지금까지 PEF가 최대주주인 기업들은 질적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증시 상장이 불가능했다. PEF의 목적은 수익실현이므로 상장 이후 기업의 경영 안정성이 훼손돼 투자자들에게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한국거래소는 ‘상장심사 가이드라인’에서 “거래소는 기본적으로 최대주주가 PEF인 경우 상장 신청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현행 6개월인 최대주주의 보호예수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고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시 2대주주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상장 후 일정 기간 일정 지분율을 유지하는 등의 경우에는 상장을 예외적으로 허용해왔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엄격해 그동안 PEF가 최대주주인 기업 중 상장을 시도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따라서 상장에 필요한 경영권 안정 장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게 거래소의 구상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경영의 안정성은 질적 심사 항목이라 상장 가능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긴 힘들지만 상장예비심사 청구가 들어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완화된 기준으로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향후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확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래소가 PEF가 최대주주인 기업에 대한 상장 심사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올 들어 신규 상장한 곳이 DSR 현대로템 두 곳밖에 없을 정도로 ‘상장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주주가 PEF라고 해서 상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IPO시장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거래소의 판단이다.

또 한 가지는 국내 PEF시장이 급성장하면서 PEF가 최대주주인 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PEF업계에서는 투자한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향후 다양한 형태의 ‘액시트(차익실현)’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PEF운용사 부사장은 “지금까지는 비상장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한 경우 다른 투자자에게 지분을 통째로 매각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상장이 가능해지면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최소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시장에서 팔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다른 PEF운용사 대표는 “상장이 가능해지면 기업의 가치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주식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