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목탁 소리마저 사라진 절간
“절간에 이따금 들리던 목탁 소리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최근 만난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이 요즘 너무 조용하다”며 불쑥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종종 ‘절간’이란 말을 듣는다.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최근 한은 안팎에서는 “중앙은행으로서 최소한의 존재감마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18개월째 한은 물가 목표범위의 하한선(2.5%)을 밑돌고 0%대 물가가 석 달 연속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의 저물가는 중앙은행의 통제 범위 밖이라는 게 한은의 해석이다. 한 시장전문가는 “저물가에 대한 원인 분석만으로 한은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며 “정확한 물가 전망을 위해 공급 변수에 대한 예측 능력이라도 키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외환당국으로서 한은의 독자적인 목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원화 강세 속에 외환시장 안정은 기획재정부가 도맡아하고 있다. 기재부는 과장급부터 부총리까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시장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한은은 기재부와 공동으로 단 한 차례 구두개입을 한 것이 전부다. 최근 투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한은은 “아직은 지켜볼 때”라는 반응이다. “비트코인은 독점적 화폐발행 기관인 중앙은행에 대한 도전이자 통화정책의 효율성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에도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못 내놓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총재 간담회조차 시장의 관심을 못 받는다면 할 말 다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2.5%로 6개월째 동결하고 있다. 한은 금통위가 열리는 날 이코노미스트들이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며 총재 발언에 귀를 쫑긋하던 시절도 옛말이 됐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해 3월 간부 워크숍에서 “한은은 결코 사회와 유리된 절간이 아니다”며 “(한은이) 당면 문제에 대해 등불을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9개월이 지난 지금, 한은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돌아봤으면 한다.

서정환 경제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