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의 '진짜 보신주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
“건설 조선 해운업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금융회사 보신주의 때문이라니, 앞뒤가 바뀌어도 너무 바뀐 것 아닙니까?”
A은행 관계자는 지난 6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전해 듣고 이같이 항변했다. 신 위원장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건설 조선 해운 부문의 업황이 어렵고 금융지원도 잘 되지 않는 것은 경기 순응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격하게 표현하면 금융사의 보신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신 위원장이 특별히 겨냥한 ‘타깃’이 없었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최근 한진해운 영구채 불발 사태를 떠올렸다. 워크아웃 중인 쌍용건설에 대한 일부 채권단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요구를 떠올린 이들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라면 호황기에 불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마땅하지, 최대한 사업을 벌여놓고 은행들이 유동성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버티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으냐”고 반박했다. 일부 기업의 ‘병사(病死)’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 위원장의 발언은 올 들어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취한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그동안 대체로 ‘조용히’, ‘시장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며’ 구조조정을 하도록 금융권을 채근했다.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체결을 주도했고, (주)STX에 대해선 자율협약 체결 가능성을 열어 놓도록 요구했다. 한진해운 영구채에 보증을 서지 않겠다는 금융사들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구조조정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야말로 ‘진짜 보신주의’라고 지적한다. B은행 관계자는 “살아나기 어려운 기업이라도 금융사가 계속 돈을 빌려주면 망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기업의 어려움을 금융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내 임기는 조용히 넘기자(not in my term)’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수출의 25%를 담당했던 노키아가 쓰러진 자리에 벤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 정부 같았으면 노키아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고 금융권을 닦달했을 것”(C은행 관계자)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
A은행 관계자는 지난 6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전해 듣고 이같이 항변했다. 신 위원장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건설 조선 해운 부문의 업황이 어렵고 금융지원도 잘 되지 않는 것은 경기 순응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격하게 표현하면 금융사의 보신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신 위원장이 특별히 겨냥한 ‘타깃’이 없었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최근 한진해운 영구채 불발 사태를 떠올렸다. 워크아웃 중인 쌍용건설에 대한 일부 채권단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요구를 떠올린 이들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라면 호황기에 불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마땅하지, 최대한 사업을 벌여놓고 은행들이 유동성을 공급해 주지 않아서 버티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으냐”고 반박했다. 일부 기업의 ‘병사(病死)’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 위원장의 발언은 올 들어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취한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그동안 대체로 ‘조용히’, ‘시장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며’ 구조조정을 하도록 금융권을 채근했다.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체결을 주도했고, (주)STX에 대해선 자율협약 체결 가능성을 열어 놓도록 요구했다. 한진해운 영구채에 보증을 서지 않겠다는 금융사들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구조조정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야말로 ‘진짜 보신주의’라고 지적한다. B은행 관계자는 “살아나기 어려운 기업이라도 금융사가 계속 돈을 빌려주면 망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기업의 어려움을 금융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내 임기는 조용히 넘기자(not in my term)’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수출의 25%를 담당했던 노키아가 쓰러진 자리에 벤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한국 정부 같았으면 노키아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고 금융권을 닦달했을 것”(C은행 관계자)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