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국 부통령
부(副)를 파자(破字)해보면 흥미만점이다. 입(口)에 재물(田), 곧 부귀가 달렸으니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 입을 잘못 열면 칼(刀)이 날아온다. 그 입 바로 위에는 언제나 1인자(一)가 있다. 글자가 만들어진 그 옛적이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의 속성은 같은 걸까. ‘부’자 붙는 자리, 2인자란 게 대개 그렇다.

접두어 부가 앞에 붙어 재미없기는 부통령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바로 다음이지만 미국 부통령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미국 부통령은 형식적, 의전적 자리에 불과했다. 사표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난 것이 부통령제라고 하지만 법적 권한도 별로 없다. 명함만 거창한 이 자리가 그나마 찬밥신세에서 벗어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때부터라고 한다. 3선 도전 때 루스벨트가 부통령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해온 관행을 깨고 본인이 지명하면서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부통령을 조롱하는 일화도 많다. 부통령이든 총리든 대통령제에선 한계가 분명한 자리다. 그래도 미국 부통령에게 두 가지 권한만은 명확하다. 대통령 유고 시 대권 승계권과 상원의장 겸임권이다. 전자로 각광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린든 존슨과 제럴드 포드다. 존슨은 암살된 케네디를 뒤이었고, 포드는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전격 사임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올랐다. 상원의장직은 명예는 대단해 보이지만 양당이 동수로 나뉠 때 캐스팅보트권 외에는 이렇다 할 실권은 없다.

그래도 미국 부통령의 힘은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루스벨트 급서로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국정 현안에서 우왕좌왕했던 트루먼의 대통령 승계 경험에 대비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자리란 게 사람 하기에 달렸다. 아들 부시 정권 때 딕 체니 부통령은 국방장관 경험을 바탕으로 알카에다와의 전쟁과 이라크 공격을 주도했다. 앨 고어는 부통령 경력을 발판삼아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은 5년 전, 국제무대에 약했던 오바마의 외교·안보분야 러닝메이트에 지명됐다. 1972년 만 29세에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 뒤 줄곧 상원을 지켜왔고 외교위원장까지 지낸 경력을 신예정치인이었던 오바마가 높이 산 것이다.

지난주 그 부통령 바이든이 한·중·일을 순방했다.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 부통령이기도 하지만 상원의원 40년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어려울 것도 없는 바이든의 언어에 우리 외교부가 해명자료까지 냈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