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업도 쟁의행위의 일종이므로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나왔다. 파업뿐 아니라 태업에 가담한 조합원의 급여도 그 기간만큼 감액해야 한다는 뜻이어서 임금 손실 없이 사업자를 압박하는 데 악용되던 태업 관행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강모씨(37) 등 전국금속노조 경남제약지회 소속 여성 근로자 57명이 “미지급 임금 2억여원을 지급하라”며 경남제약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발표했다.

○“태업=무노동·무임금”

대법원은 표면적으로는 작업을 하지만 노동조합의 통제 아래 집단적 작업능률을 낮춰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행위인 태업을 쟁의행위라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근로를 불완전하게 제공하는 형태의 쟁의행위인 태업은 근로 제공을 일부 정지한 것이므로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적용된다”며 “회사가 태업 기간만큼의 임금을 삭감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 원심은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의약품 제조·판매업체인 경남제약 노조는 회사가 HS바이오팜에 인수되자 이에 반발, 2007년 7~9월 ‘고품질 운동’이란 명목으로 39일 동안 태업에 들어갔다. 조합원 일부 또는 거의 전부(7~63명)가 하루 1.8~8시간 동안 정상적인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경남제약은 결국 직장폐쇄 조치를 취했다가 2008년 4월에야 정상 가동됐다. 경남제약 생산액은 이 과정에서 2007년 7월 전년 대비 26.78%에 불과한 9억4000만원을 기록한 데 이어 8월 3억3000만원(10.37%), 9월 4억5000만원(13.59%) 등으로 급감했다. 강씨 등은 회사가 태업 시간을 시급으로 환산한 뒤 이를 제하고 급여 및 정기·추석 상여금을 지급하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

○“휴일임금·상여금 지급도 안 돼”

대법원은 사실상 태업을 사주한 노조 전임자들에게도 일반 조합원들처럼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노조 전임자들은 근로 제공 의무가 면제돼 일반 조합원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아온 것일 뿐”이라며 “조합원들의 급여가 태업으로 인해 감액됐다면 노조 전임자들의 급여도 그에 상응하는 비율로 감액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휴일임금 및 상여금은 통상적인 근로를 제공했다는 전제 아래 제공된다”는 이유로 회사 측에 태업 기간 휴일임금 및 상여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현행법에 명시된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태업 사례에도 명확히 한 것”이라며 “파업 관련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확고히 한 판례는 있었지만 태업 관련 확정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사용자는 파업 태업 직장폐쇄 등 쟁의행위에 참가해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쟁의행위 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