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사실을 확인하면서 체포되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장성택의 ‘죄명’은 반당 혐의부터 여자·마약 문제까지 걸쳐 있다. 북한은 지난 8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당에서 출당·제명키로 결정했다는 게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1970년대부터 2인자로 활동해온 장성택이 권력무대에서 사라졌음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3000자 분량 죄목 세세히 밝혀

북한은 “장성택과 그 추종자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는 상상을 초월하며 우리 당과 혁명에 끼친 해독적 후과는 대단히 크다”며 3000자 분량으로 ‘죄목’을 낱낱이 공개했다.

북한은 “장성택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돌아 앉아서는 동상이몽, 양봉음위(陽奉陰違·앞에서는 받드는 척하지만 뒤로는 다른 행동을 함)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또 장성택과 측근들이 “사법검찰, 인민보안기관에 대한 당적 지도를 약화함으로써 제도 보위, 정책 보위, 인민 보위 사업에 엄중한 해독적 후과를 끼쳤다”고 밝혔다. 장성택이 장악하고 있던 당 행정부가 ‘반당행위’의 근거지였음을 지목한 것이다.

북한은 장성택이 “당이 제시한 내각중심제, 내각책임제 원칙을 위반하면서 나라의 경제산업과 인민생활 향상에 막대한 지장을 줬다”며 “교묘한 방법으로 내각을 비롯한 경제지도기관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국가재정관리 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를 했다”며 공업 발전에도 해독을 끼쳤다는 주장을 내놨다.

문란한 사생활까지 죄목으로 공개됐다. 북한은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장성택이 마약까지 사용했으며 당의 배려로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 있는 동안 외화를 탕진하며 도박장까지 찾아다녔다”고 했다.

장성택은 2002년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며 룸살롱을 찾았다는 소문도 있다.

○‘김정은 1인 지배체제’ 과시

북한이 고위 간부를 숙청하면서 그 내용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평가다. 지난해 7월 이영호 당시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하면서 정치국 전원회의를 열어 “신변상의 이유로 해임한다”고 밝힌 데 비하면 강도가 훨씬 높다. 정부 관계자는 “유일적 영도체제 확립과 확고한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설사 장성택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게 북한 체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정치적 비중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장성택이 김씨 일가의 친인척이자 김정일 위원장에게 신임을 받았던 인물인 데다 북·중 관계에서의 역할 등을 봤을 때 숙청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넘기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을 정치적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완전히 매장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향후 비슷한 권력누수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정치범수용소 갈 가능성

북한은 ‘장성택 일당, 그 추종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주변인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예고했다. 장성택의 처벌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선중앙TV는 장성택이 회의 직후 군복을 입은 인민보안원들에게 끌려나가는 모습을 공개했다. 장성택이 김정은의 고모부이긴 하지만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라는 혐의를 씌운 이상 최고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범수용소로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한국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의 정책상 변화도 예상된다. 이날 발표에서 북한은 “당의 방침을 공공연히 뒤집어엎던 나머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했다”고 언급했다. 올 상반기 개성공단 폐쇄 과정이나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 등에 장성택이 반대 입장에 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성택의 퇴진으로 생긴 권부 내 공백을 최용해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채울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후 대외정책이 강경노선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